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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Sep 25. 2023

다정함에도 깊이가 있더라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주간 이고양 리뷰 (09.11~09.25)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주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주간 이고양 리뷰'.

매주 월요일마다 찾아올게요~



[23.09.12 화요일 - 카드지갑 목걸이만큼은 제발...]


성인 ADHD를 겪는 사람들은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단순히 조심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 인해 주의력이 차마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물건을 또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보통사람들처럼 '아.. 잘 챙길걸'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질병을 다시금 인지하며 괴로워하고 심한 경우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아를 혐오하게 되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다.


사실 우산이나 지갑같이 소소한 물건들을 잃어버리는 것은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자주 잃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정말 두려운 것은, 이러다가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다. ADHD와 치매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밝혀진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ADHD 환자들은 자신의 건망증 증세가 치매로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금은 사소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간단한 일정 등을 잊어버리지만, 나중에는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중요한 일정들 마저 잊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니, 더 나아가서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기억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불안과 걱정으로 점점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고 한다. 건망증은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질병일지도 모른다.


내 경우에는 다른 것들은 잘 잃지도 잊지도 않으면서, 유독 잘 잊어버리는 것이 하나, 그리고 잘 잃어버리는 것이 하나 있다. 잘 잊어버리는 것은 사람의 이름이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지인의 이름마저도 이따금씩 기억이 나지 않아 그냥 '형'이라고 부르며 넘어갈 정도다. 얼마 전에는 친동생에게 연락할 일이 있어 핸드폰을 켜고 번호를 검색하려 했는데, 친동생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핸드폰을 들고 한참을 고민에 빠졌었다. 

내가 잘 잃어버리는 하나는 바로 카드다. 사실 이건 건망증보다는 잘못된 습관 때문인데, 지갑은 가방 안에 넣어두고 카드 하나만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쓰는 습관 때문에 카드를 자주 잃어버린다. 거의 1년에 2~3번은 잃어버리는 것 같다. 


맞다. 사실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이토록 장황한 글을 쓴 이유는 최근에 또 카드를 잃어버려서이다. 또 잃어버렸다고 홍토끼에게 호되게 혼났다. 내가 잃어버린 카드만 다 모아도 카드게임 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혼나는 와중에도 웃겨서 빵 터질 뻔한 거 꾹 참느라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아니, 사실은.. 또 잃어버리면 카드지갑 목걸이를 사서 목에 걸고 다니게 만들 거라고 해서... 그것만큼은 할 수 없어서 고치려고 한다. 


카드는 항상 지갑에! 귀찮아도 지갑을 꺼내서 결제하기! 그리고 절대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카드에 홍토끼와 나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이러면 좀 더 조심하겠지...?


[23.09.17 일요일 - 산책이 한창 즐거울 나이]


산책은 짧은 여행이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는 홍토끼를 만나며 깨닫게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장거리 여행을 가지 않는 우리에게 산책은 가장 즐거운 여행이다. 산책을 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 공간에 완전히 녹아들곤 한다. 같은 길을 걸어도 목적지가 있을 때에는 그저 목적지를 향한 경로에 불과하지만, 산책을 하며 그 길을 지나갈 때에는 같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가오게 된다. 


통화도 많이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이동을 할 때에도 정말 쉼 없이 대화를 나누는 우리지만, 대화가 가장 즐거울 때는 산책을 할 때이다. 홍토끼도 나도, 그때에는 발걸음이 한결 더 가벼워지고 기분도 함께 들뜨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공원들을 참 좋아한다. 우리의 얼마 안 되는 데이트 코스는, 우리가 좋아하는 카페와, 우리가 좋아하는 식당과, 우리가 좋아하는 서점과, 우리가 좋아하는 공원들로 이루어진다. 다양하진 않아도, 그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다.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곳을 걷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니까.




[23.09.19 화요일 - 다정함에도 깊이가 있더라]


나는 다정한 사람이다. 내 입으로 말하기 참으로 민망한 표현이지만, 그런 사람이고자 노력해 왔고, 그 노력 덕분인지 다정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특히나 그 다정함을 지금은 한 사람에게 모두 쏟아부으며, 다정한 사람일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다정함을 가지려 할수록 알게 되는 것은, 다정함에도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어떤 다정함도 감히 얕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선함과 따스함으로 이루어진 다정함은 반드시 누군가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힘이 있기에 다정함은 언제나 위대하다. 다만 그 선함과 따스함 말고도 또 다른 요소가 다정함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요즘 느끼게 된다.


내가 요즘 계속 고민하는 다정함은 속 깊은 다정함이다. 속 깊은 다정함은 생각에서 나온다. 선함과 따스함은 사람의 본성과도 같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즉시 보이는 다정함이지만, 속 깊은 다정함은 상대방을 위해 한 번 더 고민하고, 더 좋은 말에 마음을 담아내려 애쓰는 것이다. 그래서 한 발 느리지만 더 깊은 감동과 위로를 안겨줄 수 있다.


또한 속 깊은 다정함은 깊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상대방이 아무리 감정적이어도, 대화의 흐름이 아무리 부정적이어도, 상대방이 어떤 대답을 유도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게 다정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끓는 감정도, 부정적인 마음도 모두 감싸 안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런 마음을 배우고자 잘 읽지 않던 분야의 책들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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