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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Oct 19. 2023

너 만큼 나도 소중하거든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 이고양 일상 리뷰 (10.05~10.18)


보라고 쓰는 일기 시즌 2는 비정기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기로 했어요.

시즌 1처럼 일상 속 이고양의 생각도 담아내지만,

시즌 1과는 다르게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도 함께 적어나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이름은 '이고양 일상 리뷰'.

이따금씩 찾아올게요~


[23.10.05 목요일 - 아픈 게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프다. 오랜만에 호되게 아프다. 기침이 정말 목을 찢는 듯이 난다. 이렇게 아픈 게 정말 오랜만이다 싶을 정도로 아프다. 오랜 동반자인 편두통을 제외하면 사실 평소에는 그리 아픈 편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보다 튼튼한 편이지만, 평소에 건강했던 반동인 듯이 환절기만 되면 한 번씩 이렇게 죽을 듯이 앓곤 한다. 1년에 딱 두 번. 환절기 때만 그러는 걸 보면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온도 변화에만 민감한 것 같기도 하다. 특히 더워질 때 보다 추워질 때 호되게 앓는다. 


증상도 매년 다르다. 어느 해는 지독한 몸살. 어느 해는 이제는 익숙한 두통이 새삼 아프다 느껴질 정도로 심해진 두통. 또 어느 해는 콧물만 줄줄. 올해는 목감기가 심하게 왔다. 평소에는 목만 살짝 쉬었고 하나도 안 아픈데 기침할 때마다 가슴 언저리부터 온몸이 찌르르 울리는 듯한 게, 올해는 완전히 기침에만 몰빵 된 증상인 듯하다. 처음에는 기침 안 할 때는 안 아프니까 좀 나은 줄 알았는데.. 기침 횟수가 잦아지니까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홍토끼를 만난 뒤로는,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지 환절기를 좀 약하게 넘어가는 건가 싶더라니, 올해는 요즘 갑작스럽게 유행한다던 감기에게 제대로 걸린 것 같다. 요즘 나이 좀 먹었다고 최신 유행에 많이 뒤처졌었는데, 뭐 이런 유행을 안 놓치는 건지. 이런 건 좀 놓쳐도 되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코로나 유행을 따라가지 못했던 게 내심 불만이었나 보다. 


하필이면 목감기인지라 아픈 상태가 통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엄청나게 걱정하는 홍토끼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낫기 위해 평소에는 먹어본 적 없는 쌍화탕이랑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감기약도 처음으로 사 먹어봤다. 갑자기 기침이 멈추길래 효과 끝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0분 정도 괜찮더니 다시 난리다. 


하.. 아픈 게 쉽지 않네.







[23.10.06 금요일 - 아프면 안 되는 이유]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잘 안 가는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다. 현대 의학을 불신한다거나, 이상한 신념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잘 안 간다. 어제 일기에서도 적었지만 오랜 동반자였던 편두통이 딱히 치료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하다 보니 그냥 참는 쪽을 택했었는데, 그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플 때에도 병원을 잘 찾지 않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바로 병원에 왔다. 어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바로 다음날 병원에 가다니. 이고양 인생에서 정말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내가 지난 30여 년간 하지 않았던 행동을 이제 와서 한다면 대부분 그 이유는 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바로 병원에 간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은 홍토끼가 너무 걱정을 하고 있어서였다. 실제로도 홍토끼를 만난 뒤로 가장 아팠었고, 하필이면 목감기라 만나지 않아도 내 상태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어서인지 정말 너무 걱정을 했었다. 


사실 홍토끼는 평소에도 자주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인데,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자기 아픈 이야기는 하지도 못하고 내 걱정만 하고 있는데 그게 참 마음이 쓰였다. 평소에도 약간 컨디션이 안 좋거나 살짝 아플 때면 홍토끼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아픈 건 내 포지션! 이고양은 날 걱정하고 돌보는 포지션!'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호되게 아프자마자 그 농담은 어디 갔는지 자기 아픈 건 말도 않고 내 걱정만 하고 있으니, 도리어 내가 더 마음이 안 좋더라. 그래 아픈 건 내 포지션이 아니지. 건강한 게 내 포지션 아니겠어? 그게 바로 내가 아프면 안 되는 이유다. 그거면 충분한 이유지 뭐. 그래서 병원에 바로 왔다.


아. 물론 그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는데... 계속 아프면 주말에 데이트 안 한다는데 어떡하냐.. 


얼른 병원 가야지.


사진은 병원 다녀와서 약 먹으려고 사 먹은 사골만둣국. 맛있었는데 절반정도 남겼다.







[23.10.09 월요일 - 너 만큼 나도 소중하거든]


직종 특성상 20대 중반쯤의 젊은 친구들을 신규직원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학 졸업반인 친구들도 자주 마주하게 될 정도로 대부분 사회초년생들의 첫 사회생활을 내가 직접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세대차이와 가치관의 차이를 겪으며 내가 확신하게 된 것이 있다.


내가 꼰대가 된 것이 아니라, 저들이 틀려먹었다.



오늘은 첫 출근 날 출근 예정시간 15분 전에, 개인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하였다고 카톡으로만 보내는 아주 멋진 친구를 만났다. 어떤 사정인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도 없이! 심지어 시제도 틀려먹었다. 아직 출근 시간 안되었는데 '출근을 못하였습니다' 라니. 그건 과거형이야 이 친구야. 넌 10분 뒤에 출근을 했어야만 했고. 아니 그리고 그렇게만 보내면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지? 그럼 언제 출근할 건데? 하긴 할 거니? 아니 뭔 설명이 없어.


아 진짜!! 신규직원 교육 때문에 시간도 일부러 따로 빼두었고, 심지어 오늘 바로 담당하게 될 업무 배정까지 되어있는 상태인데! 10분 전에 말해주면 어쩌자는 거야 진짜.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꼰대인 건가? 진짜로? 저 친구가 맞는 거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럴 리가 있나. 만약 모든 사람들이 맞다고 하더라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틀린 거다. 


무단결근 후에 다음날이 돼서야 하루 전날의 휴가신청서를 내미는 직원이 정말로 잘못되지 않은 건가? 심지어 그 휴가신청서에 적힌 사유는 '일신상의 사정' 딱 6글자였다.

한 달에 지각하지 않는 날보다 지각하는 날이 더 많은 직원을 정말로 이해해야 하는 건가? 5분, 10분 정도의 지각이 아니라 30분, 1시간 단위의 지각인데도?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중요한 업무라고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없이 퇴근해서 다음날까지 전화를 받지 않은 직원이 정말로 잘못되지 않은 건가? 업무는 하지도 않았으며, 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마감기한을 말해주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직원이? 

아.. 이 직원은 다시 생각해도 화나네. 마감기한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직원에게 나는 내가 마감기한을 이야기했던 통화녹음을 들려주었고, 왜 자기 허락 없이 녹음하냐고 불법이라고 되려 따지는 어이없는 경험을 다 했다. 내가 대화하는 것을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 아닐뿐더러.. 지금 업무를 왜 안 했는지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던가? 아. 참고로 퇴근 후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개인시간이기 때문이란다. 이게 진짜 맞아?


요즘 젊은 세대가 '나 자신은 정말 소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해'라는 마인드로 살아가는 것은 알고 있다. 서점에만 가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책들이 가득할뿐더러, 그러한 생각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고 오히려 정말 중요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부 젊은이들이, 아니 일부보다는 좀 더 많은 젊은이들이, 그 가치관을 훼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소중한 나 자신'에게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들 또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피해를 입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다. 그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그냥 이기적인 거다.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핑계로 인해 피해를 입는 타인을 무시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할 것이다.


나를 돌보지 않으며 남들만을 위한 삶도 잘못되었지만,

나를 돌보느라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최악이다.


나 자신을 존중하되 타인 또한 동일하게 존중해야 한다.

존중받고 싶다면, 존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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