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순수함이 필요하기에
[우리에게는 순수함이 필요하기애]
“당신 책장에는 없을 것 같은 책인데”
이 책을 사려고 할 때, 홍귤은 저런 말을 했다. 내 책장에는 없을 것 같은 책이라고.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책이 아니냐고 돌려서 말한 것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확실히 이런 책들은 내 책장에 거의 없는 책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이런 책이 싫어서 때문이 아니라, 이런 부류의 책을 한 때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지 이제는 대부분의 이야기가 식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날은 갑자기 이 책에 끌린 것일까?
사실 책 표지를 보고 고른 것도 아니었다. 나와 홍귤이 자주 가는 독립 서점에는 책방지기님께서 책의 일 부분을 메모에 적어서 책장 곳곳에 붙여두시는 데, 어느 메모 하나에 내 시선이 붙잡혀 버렸었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소년이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 두더지가 대답했어요.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어마어마하게 특별한 말은 아니었다. 아니, 심지어 이미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도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소년이 답한 것도 아니고, 두더지가 저 대답을 했다니.. 그럼 여우와 말은 대체 무슨 말을 할까? 이런 터무니 없는 이유로 시선이 사로잡혔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문장이, 그리고 이 책이 왜 그리 끌렸는지는, 이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책에는 좋은 문장들이 가득했고, 감동의 전달력도 충분히 좋았다.
다만, 내가 이끌린 이유가 이 책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했었기에,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지금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잠시 책 안으로 좀 더 들어가보자.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알게 될 몫이니 잠시 떼어두고, 가장 좋았고 가장 오래 머물렀던 페이지의 내용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네 컵은 반이 빈거니, 반이 찬거니?” 두더지가 물었어요.
“난 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소년이 말했습니다.
요즘 나는, 이런 마음을 쫓고 있다. 긍정과 부정, 흑과 백, 선함과 악함, 좋고 나쁨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이 세상 속에서, 그런 구분조차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행복. 바로 그 행복을 볼 줄 아는 마음 말이다.
긍정적임을 우월함이라 여기는 우월주의 긍정호소인들의 말문마저 막아버리는 순수한 행복.
비관적인 자신의 상황에 빠져들어 있는 나르시즘 불행호소인을 부끄럽게 만드는 온전한 행복.
억지로 찾아낼 수도 없고, 가짜로 자아낼 수도 없는 바로 그 행복을 쫓는 삶에 주목하고 있다.
아.. 이제야 내가 왜 이 책에 끌린 것인지 알겠다.
특별한 내용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굉장한 통찰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다시금 그런 것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순수함 마음이
다정함 말들이
아름다운 시선이
투명한 생각이
그것들을 가진 나 자신이
필요해서 이 책을 찾았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