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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양 Jul 07. 2024

태만과 걱정의 경계선 그 어딘가

태만도 걱정도 하지 않기가 어려워서


믿기 어려운 말이지만, 우리의 옛 선조들 중 일부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불행한 일을 막으려 대비하는 것이, 오히려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리석어 보이는 말이지만, 놀랍게도 그런 일들은 너무나도 많이 일어났었다.


불이 날 것을 대비해서 처음으로 소방도구를 준비했던 사람은, 불이 났을 때 다행히 더 큰 피해로 번지지 않게 막아낼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은 그 사람이 그런 준비를 해서 불을 다스리는 신을 노하게 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 사람을 큰 불을 막은 사람이 아니라, 화재를 끌어들인 사람이 되어 내쫓겼다고 한다.


전쟁을 대비해서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던 신하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불러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으며,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그 신하의 말 때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다.


시간이 흘러 그러한 역사를 기록으로 접하는 우리의 눈에는, 현명한 소수를 어리석은 다수가 핍박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로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보다 어리석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 시대에는 없던 경험들이 지금의 우리 시대까지 오며 쌓여 왔을 뿐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도 우리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똑같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 탓이 만연한 세상, 안전불감증이 기본인 세상.

이런 세상이라면, 대비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억울한 희생양을 만드는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니, 뉴스에서 그런 일을 본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꼭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만 그러할까.



개인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개인의 삶은 더 편협해질 수 있다.

아무리 역사의 기록이 쌓이고, 타인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한들, 우리 스스로 경험하는 것에 비하면 타인의 경험은 마음 깊이 믿어지지 않기 마련이고, 스스로 경험을 하기에는 우리의 시간은 너무 짧다.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불확실한 것 투성이고, 새로운 것 투성이다.


이렇게 불투명한 현실 앞에 보통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첫 번째 반응은 태만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일들은 일어날 리가 없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들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아무런 대비도, 아무런 조심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똑같이 살아갈 뿐이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태만이며, 자기 자신에 대한 직무유기이다.


두 번째 반응은 걱정이다. 과거에는 태만의 반응이 더 많았다면, 현대 사회에는 걱정의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안심하지 못하기에 생기는 반응이다.

불행한 일들, 두려운 일들, 무서워하는 것들이 일어나리라 믿는 현상이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혹은 일어난다 하여도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여서 그 가능성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걱정의 가장 위험한 점은, 그저 두려워 할 뿐 정작 대비는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은 지나친 두려움을 외면하고자 태만으로 자세를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는 점이다.




태만도 걱정도 자기 자신을 망치는 길이다.


태만은 편한 마음으로 살아가겠지만, 대비하지 못한 큰 일이 일어나게 되면 높은 확률로 삶이 망가지게 된다.

걱정은 그 일이 일어나던지 일어나지 않던지, 그 때까지 힘든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태만과 걱정의 경계선 그 어딘가에 서는 법을 익혀야 한다.


불행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되,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 또한 인정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리 ‘대비’해야 하지만,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도 ‘믿어야’ 한다.


아주 어려운 줄타기가 될 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자각 없는 태만이 될 수 있고, 한 발자국만 삐끗해도 걱정에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은, 그 경계선에 서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 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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