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첫 구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시가 하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 - 꽃
대부분의 시가 그러하듯이, 읽는 사람 마다 각기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시에서 읽어낸 것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로 큰 부분이었다.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가 꽃이 되었듯이,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바라듯이,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인가가 되고 싶듯이.
관계는 그것을 정의하는 누군가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의 행동을 만들어 낸다.
삶을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가지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과의 관계는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다.
나라는 존재는 분명한 독립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누군가’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것이 관계이며 그 관계는 나에게 수많은 ‘역할’을 부여해준다.
중요한 점은, 그 ‘역할’이 나로 하여금 어떠한 ‘태도’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흥미롭게 표현했는데, 모든 사람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할 때, ‘타인이 나를 향해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반드시 고려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눈치를 보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지, 이 관계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려하게 되고 그 생각으로 인해 행동이 교정된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나를 좋은 학생으로 보고 있는 선생님 앞에서는 말썽을 덜 피우고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다.
나를 좋은 친구로 보고 있는 친구에게는 우정과 의리를 지키며, 그 친구에게 헌신하게 된다.
나를 좋은 연인으로 보고 있는 연인에게는 정말 좋은 연인이 되기 위해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하게 된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재밌는 점은, 상대방의 기대와 관계 없이, 내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킨 다는 것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좋은 학생이 되려고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나 또한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좋은 연인을 만나면 나는 좋은 연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나는 좋은 사람으로서 행동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좋은 관계는 나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라캉은 우리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마냥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의 문장을 조금 빌려오자면 오늘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