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이즈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문래에 위치했던 공연장이다. 음악 공연을 중심으로 파티, 이벤트와 컨템포러리 아트 프로젝트들이 벌어졌다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로라이즈의 블로그에 나와있다.
로라이즈Lowrise란 밑위가 짧아 허리선이 표준 허리선보다 아래로 엉덩이에 걸쳐 입는 바지라고 네이버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본래는 패션용어인 셈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만 생경한 단어를 공연장의 이름으로 쓴 로라이즈는 하드코어 펑크, 자립음악생산조합 계열 공연, 해외 인디 뮤지션 내한 공연 등이 열렸던 장소다.
로라이즈는 비슷한 시기에 생겨났던 바 꽃땅, 대공분실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전위적인 인디씬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당시 관련된 공연을 자주 봤던 나는 이 세 공간을 필두로 홍대를 넘어선 새로운 음악씬이 생겨나고 있다고 봤다.
나는 이 씬에 서울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홍대의 작은 칼국수집 두리반에서 생겨난 이 움직임은 영등포, 충무로, 이태원, 돌곶이로 향하고 있었다. 이후 서울대 입구 근처에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친구들이 만든 ‘사운드 마인드’가 생기고, 망원동에 ‘샤프’라는 펑크 공연장이 생기는 등 서울씬의 크기는 점점 확장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 시기를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박다함으로 로라이즈를 공동 운영했다. 박다함은 공연 기획자이자 노이즈 음악가로 51플러스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박다함은 두리반 협상이 타결된 후 조각하는 사람들의 작업실이었던 로라이즈를 2년 정도 운영했다. 박다함의 증언으로는 당시 공간이 마음에 들어서 여러 번 공연하고 싶다고 졸랐고, 후에 공간을 판다고 연락이 왔다. 그가 알고 지내던 여섯 명이 출자를 해서 공동 운영하게 된다.
박다함은 로라이즈가 녹음 작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2인조 밴드 404의 첫 정규앨범 ‘1’을 녹음했다. 2013년 404는 한국대중음악상으로부터 올해의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받게 된다. 그들의 음악은 이전의 인디와 달리 단출한 구성만으로도 청각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로라이즈는 재미있는(어디까지나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재미’) 공연들이 많이 열렸던 공간이지만 찾기 힘든 것이 흠이었다. 때문에 로라이즈 블로그에는 이곳을 찾아내는 방법이 빼곡히 적힌 게시물이 있었다.
지금은 문래창작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이지만 2011년 당시에는 예술가들이 점점 모여든다라는 이미지밖에 없었던 지역이다. 로라이즈가 위치했던 문래동 어딘가는 철공소와 카페, 음식점이 혼재하는 약간 정신없는 지대가 되었다. 지하철에서 찾아오든 아니면 자동차로 찾아오든 로라이즈는 단번에 찾아낼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공연장은 아니었다.
공연장 앞에 오고서도 잠시 망설이게 되는데 대부분의 공연장이 자리를 잡는 지하실이 아니라 2층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뭔가 미로와도 같은 공간을 거치고 나서야 공연 장소가 나오는 기이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이런 성향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씬의 공연장에 공통된 특징이었다. 대공분실, 바꽃땅과 로라이즈는 여기에 공연장이 있나 싶을 정도로 꼭꼭 숨어 있었다. 그렇게 외진 곳에 공연장을 마련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임대료와 보증금이 싸다는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임대료가 싼 공간은 과거부터 만들어져 왔던 동네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자연스러운 도시의 미로로 기능했다.
공연장이 찾기가 힘든 곳에 있다는 것이 이들에게 약점이 되었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지 못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관점으로 보면 약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씬의 공연장들은 애초에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곳이었다. 대부분 두리반 때의 공연부터 팔로우업 해왔던 사람들이 관객의 대부분이고, 그들 대다수는 밴드들과 술 한잔 정도 먹어본 아는 사이들이었다.
찾기 힘들다는 점은 이들에게 약점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어중이떠중이(일반 관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선민의식이긴 하지만)들이 찾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공연장의 장점이 되기도 했다. 해당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특이한 형식의 음악을 주로 연주했던 공연장이기에 이런 성향은 더욱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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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서울씬은 아는 사람들끼리의 비밀스런 공간을, 공연을, 밴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이 ‘찾기 힘들다는 점’이 서울씬을 규정하는 중요한 뼈대였다. 그리고 서울씬을 이루었던 공간들이 2010년대 중반 즈음해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사라져 버리거나 유명무실해진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이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기존에 공연을 봐오던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둘씩 다른 취미로 옮겨갔다. 대신 빠져나간 사람을 채울 수 있는 흐름은 생겨나질 않았다. 이 운동, 서울씬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홍대 주변에는 무수한 공연장이 존재한다. 어떤 곳은 과연 공연장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좁고 허술한 곳도 있다. 한국의 인디들은 그런 공간을 어떻게든 찾아내서 공연한다. 의도된 것일까? 어디까지가 의도이고 어디까지가 우연일까.
여기서 그 점을 자세하게 따져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공연장을 만들고 공연을 해야 하는 인디 입장에서는 그곳이 유명한 장소이든 그렇지 않은 장소이든, 뜨겁고 차가운 물을 가릴 계제가 아니다.
이런 경향이 더욱 극심해졌던 것이 서울씬의 공연장들이었다. 홍대씬에서는 한쪽에서 공연장이 사라지면 다른 한쪽에서 새로운 공연장이 끊임없이 발굴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인디 공연을 보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 의문이 이것이다. 대체 그런 곳에서 하는 공연은 어떻게 알고 가나요?
방법은 SNS다. 밴드의 SNS를 팔로우하고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는 공연 예고 게시물이 올라온다. 공연장은 약도도 없이 주소만 덩그러니 적혀 있는 새로운 공간인 경우가 허다하다. 인디 관객들은 이 SNS의 게시물을 따라 이전에 공연장으로 쓰인 적이 없던 낯선 공간도 어떻게든 찾아내서 공연을 보고야 만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인디 밴드의 영상 중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알게 된 장소에서 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새로운 곳에 찾아가 익숙한 밴드의 공연을 보고, 때로는 전혀 몰랐던 밴드의 데뷔 공연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이 씬의 크기가 확장되고 음악적 깊이가 더해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아직 서울씬은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서울 어딘가에서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기획자와 밴드들이 남아있는 이상, 이 씬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