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지로 3가에 문을 연 술집 겸 공연장인 ‘신도시’는 개업하자마자 흥을 안다는 젊은 사람들의 집결지가 됐다. 아직 을지로가 ‘힙지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기 전에 문을 연 신도시는 건물 5층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엘리베이터는 없다. 5층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이 젊은이들을 위한 장소를 사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인적이 드문 을지로에서 길을 가다 우연히 신도시의 간판을 보더라도 그곳이 술집인지 아니면 당구장인지 알기는 쉽지 않다.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있는 사람만이 5층까지 걸어 올라가 신도시를 영접할 수 있다. 신도시는 현대미술가인 이병재 씨와 사진작가인 이윤호 씨가 운영하고 있다. 동명의 레이블을 통해 책이나 음원을 제작해 발매하기도 한다.
어쩌다가 이들은 을지로까지 와서 이 괴상한 이름의 술집을 열게 된 것일까. 이병재 씨는 VISLA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도시 이전에 이태원 부근에서 ‘꽃땅’이라는 술집을 운영했다. 그 공간에서 술도 팔고 공연도 하다가 당시 자주 오던 단골, 이윤호를 알게 됐다. 자연스레 친해지고 나서부터 곧잘 어울렸다. 꽃땅을 접고 쉬는 기간 동안 이윤호와 함께 새로운 술집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꺼낸 이야기가 점점 구체화됐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거쳐 신도시를 열었다.”
꽃땅이라는 바는 로라이즈, 대공분실과 함께 자립음악생산조합 계열 밴드들이 주로 활동했던 장소 중 하나다. 때문에 신도시도 자립음악생산조합 계열 밴드와 DJ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공연을 개최했다. 크게 봐서는 두리반 사건 이후로 생겨난 흐름의 한 줄기가 신도시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도시란 특이한 이름을 짓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낙원상가 근처에 있던 망한 게이바의 간판 ‘신도시’를 발견하고 그 이름을 따서 술집을 이름을 지었다. 현재도 그 간판은 신도시 천장에 붙어있다.
신도시는 인테리어가 특이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물상에서 그대로 주워온 물건들이나 중고나라 무료 나눔으로 얻은 소품들을 그대로 진열해놓았다. 덕분에 신도시의 분위기는 어떤 카페와도 다른 기묘한 공간의 느낌을 내게 되었다. 신도시 특유의 분위기는 CJ와 같은 대기업의 시선을 자연스레 끌게 되어 지산록 페스티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을지로는 본래 골목마다 인쇄소나 공구상 같은 가게들이 들어선 낙후된 거리다. 대중들에게 을지로가 재조명받게 된 것은 노가리 골목 덕분일 것이다. 만선호프, OB베어, 뮌헨호프, 초원호프와 같은 옛날식 맥주집의 야외 좌석에 앉아 술판을 벌여본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OB베어에 대한 강제철거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서는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서울은 매일 무너지고 새로 짓는 것이 일상적인 도시다. 서울씬이란 단어로 서울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이 ‘철거’란 키워드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래된 점포를 철거하고 새롭게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건물주의 의도와 자신들의 생존 터전을 잃고 싶지 않은 자영업자 간의 힘겨루기가 서울이란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 싸움은 단순히 거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사람들이 행동하는 양식에 영향을 준다. 한여름 노가리 골목에서의 맥주 파티를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술 먹을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 이상이다. 을지로란 거리의 고유문화가 사라지는 것이다.
거리의 문화가 보존되어 있을 때만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지 기존에 있던 노포들을 싹 밀어버리고 다른 가게를 차린다고 해서 상권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이치이지만 건물주들은 항상 무시하는 부분이다.
기존 거리 문화를 살리면서도 새로운 피를 주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을지로에 스며든 젊은 가게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을지로의 맛집은 간판이 작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입간판을 세워 놓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기존의 인쇄소 간판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음식점도 있다.
1층 가게가 드물다는 것이 새로운 가게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대부분 2층이나 3층, 높게는 5층에 위치한 곳도 있다. 이런 카페나 와인바들은 SNS를 통해 장소를 알아내고 영업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SNS에 밝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기존의 경관을 크게 해치지 않는 가게들의 생존 방식이다.
을지로의 변신은 최근에 나타난 문화 조류인 뉴트로와도 관련이 되어 있다. 과거 을지로의 모습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20대들이 해당 문화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스러우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을 중시하기에 빈트로(빈티지+레트로)라고 칭하기도 한다. 수십 년 넘은 인쇄기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쓴다거나 일본식 다방을 흉내 내는 것이 빈트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을지로에는 카페, 베이커리, 레스토랑, 바나 펍이 줄잡아 60군데 정도가 성업 중이다. 저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을지로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이번에 소개한 신도시도 그중 하나다. 코로나 때문에 일정 부분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이런 시국에도 활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주 고객층이기에 큰 영향은 없는 모습이다.
을지로의 새로운 가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빈곤한 20~30대의 창업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다. 간판이 없다는 것은 특이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생략한 것일 수 있지만 간판 제작 비용을 아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1층보다 상층의 임대료가 더 싸기 때문에 1층 가게가 별로 없다. 내부 인테리어가 예스러운 것도 오래된 물건 혹은 기존에 방치되었던 기자재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에는 이러한 을지로 특유의 분위기를 일부러 흉내 내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이는 마치 인디 음악이라는 장르가 실제로 어떤 음악적 유사성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용어가 아님에도 현실에서는 포크음악이나 R&B로 비슷비슷해지는 현상과 유사하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밴드들이 공연장이 아닌 철거농성장에서 공연하기 위해 4인 구성이 아니라 2인 구성으로, 사운드를 중시하지 않는 음악 장르로 변해온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을지로는 서울이란 도시가 지닌 오래된 미래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의 향수에 젖는다. 70~80년대 직장인들이 즐겼던 노가리와 맥주는 이들에게 힙한 음식이 되었다. 한때는 게이바에 달려 있었던 간판을 그대로 떼와서 영업하는 신도시는 이름부터 익숙하지만 낯선 공간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지만 정작 직접 경험했을 때는 신선한 느낌이 나는 공간이다.
신도시에서 우리가 듣는 음악, 사게 되는 굿즈 모두 그런 경향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은 과거의 기억 속에서 우리가 새롭게 받아들이게 될 요소들을 끄집어내 전시한다. 그것은 노가리일 수도 있고, 게이바일 수도 있다. 서울은 이들 모두를 감싸 안을 만큼 크다. 이런 서울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