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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캣 Jul 26. 2024

[서울씬기행]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한국의 인디 밴드 무키무키만만수는 유머 사이트를 통해 유명해진 드문 경우다. 그들이 부른 ‘안드로메다’라는 곡에서 ‘벌레벌레벌레’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부르는 모습이 워낙 강렬해서 벌레송을 부르는 밴드로도 알려져 있다. 유튜브 댓글에서는 중독성이 강하다는 말과 함께 2100년에서 온 밴드 같다는 말이 혼재되어 있다.


2012년 결성되고 1년 정도 짧은 활동기간을 가진 이 밴드는 해체된 지 10년이 가까워 옴에도 여전히 인터넷상에서 유머 동영상의 하나로 소비되고 있다. 구장구장이라고 불리는 장구를 개조한 악기를 연주하는 ‘무키’와 기타를 연주하며 소리를 지르는 ‘만수’는 2021년 현재에는 결혼을 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예종에서 음악을 전공한 만수 – 이민휘 씨는 ‘빌린 입’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빌린 입’은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과는 상반되는 조용한 분위기를 가진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 한예종에서 조형예술과를 전공한 무키 – 정은실(현재는 개명) 씨는 현재 현대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곡의 특징은 가사가 종잡을 수 없고 가창법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이 생목으로 소리를 내지른다는 것이다. 무키무키만만수의 이러한 창법과 맥락 없는 가사는 이들의 음악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시선이 생기도록 했다. 


실제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곡은 앨범을 만들던 중 방에 놓여 있던 홍세화 씨의 동명 도서를 보고 즉석에서 만들어낸 곡이다.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택시 운전사는 아니다

유럽의 택시 운전사는 아니다

지구의 택시 운전사는 아니다

우주의 택시 운전사는 아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똘레랑스라는 개념을 한국에 소개한 홍세화 씨가 해외에 망명 중에 쓴 책이다 보니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을 법 하지만 정작 가사 내용은 무의미한 단어들의 반복일 뿐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문구는 그저 곡을 이어가기 위한 여음구처럼 사용되고 있다.


무키무키만만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1집 앨범 <2012>를 만들어낸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부족한 곡은 일기장도 들춰보고 방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며 순식간에 만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약 석 달 만에 음반이 나왔죠.”


곡을 만들고 앨범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자못 장난스럽지만 이들의 펼쳤던 공연 활동은 사회참여적인 것들이었다. 초창기 활동을 홍대 칼국수집이자 임대차 관련 분쟁 장소였던 두리반에서 시작한 무키무키만만수는 이후 희망버스에 참여하거나 제주 강정마을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사회적 색채가 짙은 활동에 대해 무키무키만만수의 멤버들은 특별한 사명감에서 하는 활동은 아니었다고 답한다. 


무키무키만만수는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에서 이들을 모델로 한 밴드의 노래에 직접 참여했으며 안무를 도와주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주로 이들의 파격성과 유머 코드를 소재로 여러 차례 기사화를 했다. 이처럼 인디밴드 치고는 세간의 관심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받은 밴드가 무키무키만만수다. 


무키무키만만수를 활동 당시에 알았던 사람들이나 이후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나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 바로 밴드의 재결합이다. 하지만 밴드 멤버 중 한 명인 정은실 씨는 개명을 하면서까지 이전의 유명세에서 벗어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들이 다시 공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키무키만만수는 기존의 음악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개척했다. 물론 무키무키만만수의 이상한 스타일을 과연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음악이라고 지칭할지에 대한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의 귀로는 노이즈에 불과한 소리도 누군가에게는 음악으로 들릴 수 있다. 노이즈 록이란 장르가 있는 것만으로도 음악 세계의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무키무키만만수를 노이즈 록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좀 어색한 면이 있다. 장르를 정하려면 음악의 계보가 있어야 하는데 무키무키만만수는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한국 음악 역사를 살펴보면 그와 같은 포지션의 음악을 한 사람들이 등장한 적이 없다. 또 그 이후로도 비슷한 밴드는 생겨나질 않고 있다. 


한국의 노이즈 음악은 노이즈 음악대로 초창기에 활동한 사람들과 그 이후로 흐름을 이어간 사람들의 계보를 정리해볼 수 있다. 하지만 무키무키만만수의 음악은 결정적으로 레퍼런스가 없다. 음반을 만들려면 흔히 기존에 존재하는 음악들 중에서 교과서가 될만한 음반을 골라 사운드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런데 무키무키만만수는 순간의 번뜩임을 음악으로 만들어냈다. 달파란이란 인디 음악 1세대가 프로듀싱을 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인디음악과의 접점도 거의 없는 편이다.


물론 무키무키만만수를 만들어낸 사회적 풍토에 대한 해석은 가능하다.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답답한 기류와 진보적인 음악적 흐름인 자립음악생산조합, 철거민 분쟁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화두로 등장하는 계기가 된 두리반 같은 키워드로 무키무키만만수가 자라난 토양이 어떠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무키무키만만수는 스스로도 자신들의 음악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음악이 탄생하게 되었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탄생했다. 이 밴드의 많은 부분이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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