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 등쌀에 밀려 동네서점이 사라진 지도 20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서점은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거대 프랜차이즈나 예스24,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을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그동안 독립출판물을 펴내는 유행이 두세 번 열풍처럼 지나갔다. 덕분에 독립출판물만을 다루는 독립서점들이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동네서점의 위치를 지도로 알려주는 사이트 ‘동네서점’에 따르면 독립서점을 포함한 문화공간, 동네서점의 수가 전국적으로 1192개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이 중에서 술이나 커피를 팔지 않고 순수하게 책만 다루는 곳, 또 ISBN을 받은 일반 출판물을 다루지 않고 독립출판물만을 다루는 순수 독립서점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09년부터 지금까지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가 수많은 독립서점 중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유어마인드는 서점 주인 이로와 디자이너인 모모미 부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오프라인 독립 서점이다. 8년 동안 서교동에서 운영을 하다가 현재는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어마인드는 단순히 소규모 출판물, 독립 출판물의 판매 대행만을 진행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기준을 가지고 출판도 진행하고 있다. 달력이나 배지와 같은 굿즈에서부터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출판물과 상품을 제작해 판매한다.
유어마인드를 유명하게 만든 행사는 바로 독립출판물 판매 행사인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다. 유어마인드의 사장인 이로가 기획자로 참여하는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 아트북 페어는 2009년 1회를 시작으로 작년에 12회까지 개최되었다.
꽤 인기가 많아서 판매자도 몇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신청해서 당첨된다. 회가 거듭될수록 행사장 크기를 넓혀서 개최하지만 그만큼 관객 수도 늘어서 입장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기도 한다.
유어마인드는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신들의 천 가방 브랜드인 ‘원모어백’ 섹션을 강화했다. 원모어백은 다양한 브랜드의 천 가방을 소개하고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유어마인드의 고유 브랜드로 2015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홍대나 연남동 근처를 지나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천가방을 마치 독립출판물처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접근하여 개발하고 있다.
사장 이로는 서점 이름을 ‘유어마인드’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책은 각 개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마이마인드의 결과물이다. 그런 성격의 품목을 다루는 만큼 책방은 더 외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책방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어를 뒤집어 ‘유어마인드’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다.”
책방 이름 하나에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유어마인드에는 두 명의 부부와 한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산다. 이 고양이는 점잖은 편이어서 사람을 할퀴거나 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서점을 방문해보면 고양이는 깊숙한 곳에 숨어있기를 좋아해서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고양이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10년간은 유어마인드로부터 흘러나온 독립출판의 기세가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연예인인 노홍철이 용산구에 철든 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오상진, 김소영 아나운서가 마포구에 당인리 책 발전소를 차리기도 했다.
독립서점은 일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책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도 하며, 베스트셀러의 둥지가 되기도 한다.
2018년 출판계를 뒤흔들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본래 자신의 치료기록을 적어 만든 독립출판물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500부를 찍었는데 후에 정식 출판되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독립서점의 매력은 무엇일까. 많은 독립서점이 책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와의 만남, 강연, 사인회 같은 문화행사를 개최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독특한 출판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감성을 그대로 흡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술이나 커피, 차를 마시는 공간을 마련한 독립서점도 많다. 이런 서점에서는 책 속에 파묻혀 커피 향을 음미해볼 수 있다.
물론 독립서점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책에 있을 것이다. 유어마인드는 어떤 책을 다루고 있을까.
우선 SELECTED 페이지에서 예약 판매하고 있는 책을 살펴보자. ‘잘돼가? 무엇이든: 각본집과 그림책’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은 영화 ‘미쓰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의 이경미 감독이 2004년 연출한 단편영화 ‘잘돼가? 무엇이든”의 각본집 겸 그림책이다.
책의 전반부에는 이경미 감독의 각본이 수록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각본을 각색한 그림이 실려 있다. 이 책은 부록으로 단편영화 ‘잘돼가? 무엇이든’과 ‘아랫집’의 DVD를 첨부하고 있다.
이경미 감독이 메이저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좀 더 마이너한 책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 더 깊숙하게 들어가 보자. 유어마인드에서 출판한 ‘무슨 만화’가 있다.
이 만화책은 ‘OOO’ 작가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계정을 통해 꾸준히 연재한 네 컷 만화를 모았다. 2016년부터 제목과 네 개의 컷 외에는 어떤 설명 없이 업로드된 작품으로 2년 반에 걸쳐 스스로 연재한 네 컷 만화와 미공개작을 포함해 100여 편을 엮었다.
유어마인드는 이렇게 인터넷 세계에서만 유명한 작가의 작품에 집중하기도 한다. 이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 지도 알 수 없는 ‘OOO’ 작가의 작품은 허무하기도 하고 충격적이기도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실상 아무런 내용이 없다고 해도 무방한 4컷 만화는 유어마인드라는 책방 혹은 출판사가 갖고 있는 책에 대한 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유어마인드가 다루는 책은 어떠한 명시적인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목가적인 경우가 많다. 친구와 함께 다녀온 여행기를 만화로 풀어썼다든가, 최초의 주거 기억에 관한 열네 명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책들 사이에서 공통된 점들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독립출판이란 장르명 자체가 모호한 공통점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북소사이어티와 같은 다른 유명 독립서점을 방문해봐도 항상 느끼는 부분이다.
뭔가 실용적이지 않고 다루는 대상이 애매모호하며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위적인 책들이 이들 서점이 다루는 독립출판물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독립출판물은 조금씩 온라인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도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온라인에서 개최되었다. 굳이 온라인 시대에 인쇄물 형태의 물성 있는 제품을 생산해내는 유어마인드. 코로나 이후 시대에 어떤 자리매김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아직 독립출판, 독립서점의 미래는 불투명한 편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출판의 새로운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