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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문 Oct 22. 2020

캐스트 어웨이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

아이가 태어난 지 48일 차.


아침에 신랑이 출근하고 아기를 재우니 아침 9시 반이다. 나에겐 2시간이 남아있다. 이런 하루들이 벌써 48일이 된 것이다. 그제부턴 TV도 틀지 않아 하루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적막하고 고요하다. 그래도 아기가 모유 수유하느라 TV와 등 돌려 있을 땐 넷플릭스를 잠깐씩 틀어본다. 그리고 내가 찜한 영화 리스트 중에 <캐스트 어웨이>를 보니 마음이 쿵 다. 영화관에서 봤던 그 영화, 제목과 지금 내 상황이 같은 이 영화. 섬에 떨어져서 세상과 동떨어진 기분일 때 보면 딱일 것 같아, 다시 수유를 하며 짬짬이 따뜻한 커피를 마시듯 영화를 본다.




세상 끝에서 스스로를 구해낸 이야기.  놀랜드는 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인양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시간에 얽매여 살아간다. '페덱스'의 직원인 그는 여자 친구 캘리 프레어스와 사랑에 빠져 있지만 늘 시간에 쫓겨 일을 하느라 살갑게 함께 할 시간은 가지지 못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캘리와의 로맨틱한 데이트를 채 끝내지도 못한 그에게 빨리 비행기를 타라는 호출이 울리고 둘은 연말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캘리가 선물해준 시계를 손에 꼭 쥐고 "페덱스" 전용 비행기에 올랐는데, 착륙하기 직전 사고가 나고, 기내는 아수라장이 된다. 그의 몸을 때리는 파도. 눈을 떠보니 적막한 해변과, 무성한 나무, 높은 암벽.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떨어진 것을 알게 된 척은 생존을 위해 이전의 모든 삶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외롭게 살아간다.


4년 후. 고립된 섬에서 1500일이나 되는 시간을 배구공 윌슨과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이겨낸 그는 어느 날, 떠내려온 알루미늄 판자 하나를 이용해 섬을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을 이용하여 뗏목을 만든다. 섬에 표류한 지 4년 만에 거친 파도를 헤치고 탈출을 감행하는 그는 위대한 남자다. 4년 동안 그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사람이 상황을 딛고 스스로를 구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만약 나라면.,." 두 달 만에 나의 가치에 대해 철저하게 포기하기 직전의 출산 후 한 헐벗은 여인은 생각했다.




시간만이 소중한 사람이 시간이 모두 사라진 곳에서 동떨어져 사는 기분은 어떤 걸까. 아이를 낳고 집에서만 하루하루를 보내는 지금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시간을 즐기고 이겨내야 하지만,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시련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지 나는 알고 있다.


수천 번 마음을 굳게 먹어도 10달간 소중하게 품어오고 얼마나 큰 출산의 아픔을 견디고 키우고 있는 내 아기지만, 창문 밖의 세상은 여전히 똑같고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은 아침에는 바삐 어딘가로 출근을 하고 해가 지면 양 손에 치킨이나 피자 등을 들고 돌아오는데 창문 안에서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여전히 집 안에서 아이와 있는 이 기분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시간만이 전부인 사람이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서 추락해 겨우 손에 쥔 구명정에 의지한 채 비 내리는 어둡고 높은 파도에 휩쓸리는 장면이 얼마나 춥고 공감돼 온몸에 닭살이 돋았는지.. 아이를 낳은 지금에야 공감된다.


나 자신의 행복과 나 자신의 치장과 휴식과 커리어가 전부인, 엄마의 절대적인 보호 안에 살고 있던 내가 갑자기 그 엄마가 돼야 하는 것이다.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해가 말갛게 갠 잔잔한 파도가 들이치는 모래사장에 떨어져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그 기분을 나는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니까.. 시간이 갈수록 매일 아침 스스로를 구해내기 위해 커피(디카페인)를 마시고 기운을 차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이해하고 있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책과 육아책들을 구해 열심히 보며 아이를 이해하려 한다. 지금 나의 아기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달라져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엄마 품에 있고 싶다고 한다. 이 구절에 눈물 흘렸고, 한편으로는 못내 아이를 원망했던 스스로를 다독인다.


나는 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꼭 안겨있고 싶은 엄마니까.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중인, 집 안에서 아이와 씨름하고 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이 막막한 기분이 더 막막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구한 사나이와 함께 섬에서 탈출한 기분이 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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