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31 기록
나에게 2022년은 고통과 변화 이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고통]
올해 벚꽃이 만개하던 날, 아빠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나는 이제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고 ‘아빠, 장인어른, 할아버지’등의 아빠랑 연관된 단어만 들어도 여전히 감정 주체가 안되긴 하지만 어떻게 꾸역꾸역 버텨서 2022년 마지막 날까지 왔다.
그것만으로도 진짜 천만다행이고 스스로가 대견하다 생각할 정도로 말도 못 할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변화]
아빠와의 영원한 이별로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다.
계획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나는 ‘미래’에 집착하며 살았던 것 같다.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스타일이랄까..
현재의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몇 년 뒤의 내가 행복할 테니 그때를 위해 현재는 과감히 포기했었다.
때로는 지금은 여건, 용기가 없다며 하고 싶은 것도 나중으로 미룬 적이 많았다.
언젠가 해야지.. 라며 미래의 나에게 기댔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게 너무 어리석고 아무 의미 없는 바보 같은 짓이란 걸 깨달았다.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언제 하늘의 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게 당장 내일일 수도, 모레일 수도, 또는 수십 년 뒤 일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 타령만 하다 후회 가득한 채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현재의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그간 버티면서 살았던 하루들이 매우 아까웠다.
또 생각해 보면 아무리 계획한다고 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적이 많고,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 기회가 와서 성취하는 경우도 허다한 걸 보면 더욱 미래만 생각하며 살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 후로 난 미래 계획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일 죽어도 별 여한이 없게 하루하루 집중해서 하고 싶은걸 열심히 하며 사는 게 내 계획이다.
내 하루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기여했으면
또 하루 열심히 놀아서 기분전환이 됐으면
다시 하루 열심히 쉬어서 몸과 마음에 여유를 찾았으면
그냥 그걸로 된 거다.
먼 미래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나에 포커스를 맞추어 살아간다.
가끔 몇 년 뒤의 모습이나 포부에 대한 질문을 듣곤 하는데
나는 이제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저는 몇 년 뒤에 뭐가 되어 있을지, 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하루하루 하고 싶은 거 하며 열심히 살다 보면 그때 뭐라도 되어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