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청년 공간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도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1. 사라진 친구들
요즘 청년들은 친구가 없다. 마음을 터 놓고 진지하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급전이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친구는 몇 명이나 될까? 어릴 적 친했던 친구는 하나 둘 연락이 끊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쉽지가 않다.
과거엔 동네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나오고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지만 요즘은 같은 동네에 살아도 얼굴 볼일이 없고 같은 학교를 다녀도 경쟁하느라 바빠 누구를 친구라고 부르기도 힘들어졌다.
모두가 in서울 대학을 원하지만 모두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내 옆의 학생은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되었다. 예전엔 같은 학교 친구, 같은 반 친구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같은 반이었던 학생 정도로 부르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은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통해 친구를 사귈 기회를 박탈했다. 학원을 보내고 싶지 않지만 혼자 놀 수 없어서, 친구들이 모두 학원에 다니고 있어서 학원에 등록했다는 아이도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어디서든 친구가 될 수 있지만 학교에서, 학원에서 같이 공부만 한 아이들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것들을 극복하며 친구로 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흔히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한다. 이는 싸움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싸움과 같은 상황을 겪고 그것들을 스스로 극복하며 성장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그럴 기회조차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쓸쓸한 죽음을 맞는 '고독사'는 점차 늘고 있는데 그 고독사 중 청년의 비율은 약 7% 정도이다.(2022년 보건복지부 고독사 실태 조사 발표) 얼핏 적은 숫자로 볼 수 있지만 청년의 고독사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비율이 저 정도라는 것이지 고독사 이전의 고독생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2019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청년 1인 가구의 숫자는 68,839 가구라고 한다. 이 중 얼마나 되는 이들이 고독생을 겪고 있는지 자료조차 없다.
지금 고립된 청년을 위로하는 것은 SNS너머의 화려한 삶을 구경하는 것 밖에 없다. 언젠가 나도 그런 삶을 살아야지 하는 버킷리스트만 나날이 늘어날 뿐이다.
2. 핵심은 사람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우리는 늘 관계를 맺고 싶어 하며 그것을 선망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그것이 너무 힘들기에 계속해서 온라인 세계로 빠져든다.
케빈베이컨의 6단계 이론이 있다. 이 것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은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고 사람과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상호작용 하기 가장 좋은 조건은 그 둘을 소개해주는 사람이다. 나와 오랫동안 신뢰와 존중으로 관계를 이어온 사람이 다른 사람을 소개해 준다면 우리는 처음 누군가를 사귀기 위해 했던 프로세스의 대부분을 생략할 수 있다. 특히 그 사람이 안전한지, 신뢰할 수 있는지, 나와 뭐라도 잘 맞는 것이 있을지 하는 것들 말이다.
3. 공간의 핵심은 매니저다
지금 청년들은 외롭다. 정확히는 외로울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으며 그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가진 에너지의 대부분을 소비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말 거는 사람은 영업 아니면 사이비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타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물론 누가 길거리에서 쉽게 타인에게 말을 하겠냐만은 길이 아닌 곳에서도 쉽게 말을 걸 수가 없다. 에너지가 넘치고 아무것도 모를 어릴 때는 쉽게 사람을 사귀고 어렵지 않게 친해지며 인생의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만난 사람들은 그렇기가 어렵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알고 그 사람이 악당인지 아닌지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처음부터 다 알아보기엔 힘도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인터넷에는 인간관계의 부정적인 편린들이 떠돈다. 친구가 어쨌네 축의금이 어쨌네 등등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찾기보단 나를 위해 그 에너지를 쏟는다. 즉, 그냥 고독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청년공간의 매니저는 어렵지 않게 청년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먼저, 신뢰할 수 있는 기관에서 일하는 보증된 사람이다. 또한 경험 많고 성실한 매니저는 그 공간을 찾아준 청년들과 관계 맺기에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먼저 그 청년공간의 매니저와 관계 맺기를 한 청년은 그를 통해 어렵지 않게 타인과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간만 덩그러니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혼자 그곳에 있다 혼자 돌아갈 것이다.
3-1 청년공간의 프로그램은 모객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수의 청년공간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고 그것이 많이 도움 되었다고 하는 청년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이 청년공간 운영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부 청년공간이 청년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나 휴식공간이 아닌 배움의 장소로만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서실처럼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년공간이 단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소가 된다면 주민센터와 다를 것이 없다. 이런식으로 운영되다 보면 나중엔 자연스럽게 두 공간이 통폐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주민센터와 청년공간 중 어떤 공간이 주가 될까? 너무 당연하게 주민센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청년공간에서의 프로그램은 그 공간에 외로운 청년들이 방문할 수 있는 명분으로 족하다.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절대 청년들의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목적을 잊어선 안 된다. 그 공간에 방문하는 청년들과 끊임없이 관계 맺기를 해 나가야 한다.
4. 매니저의 근속 기간을 늘려야 하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공간은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는 도구이며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공간 매니저다. 청년들은 이 매니저를 통해 크게 부담 없이 타인과 관계 맺기를 하고 어쩌면 내가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도 있다.
그런 매니저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면 혹은 초단기로 일을 하고 돌아간다면 이 모든 주문은 성사될 수 없는 혼잣말에 불과해진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청년공간의 매니저는 좋은 처우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한 그곳에서 지역 청년들과 관계 맺기를 하며 우리 지역의 우수한 자산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