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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호 Apr 19. 2024

청년정치의 본령

청년정치의 본령은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10년 정도 청년 활동가로 살아온 듯 하다. 10년 정도면 그래도 현상에 대해 어느정도 말을 얹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써본다.


청년정치는 하면 할 수록 물음표가 생기고 관련한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부정적인 반응 뿐이다. 왜 그럴까 하는 고민을 해 봤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왜 답이 나오지 않는지 알 것 같다.


청년정치는 없다. 청년정치를 다르게 말하면 아마추어 프로선수쯤 되지 않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란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다. 가령 100명이 모인 집단에서 한달 회비 100만원이 모였다면 이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논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험도, 지식도, 아는 사람도 부족한 청년에게 그 일을 맡기면 당연히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애초에 집단 구성원들의 신뢰를 이끌어 낼 만한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그 모든 전문가들은 아마추어부터 시작했다. 당장 시간이 없고 돈이 없다고 해서 아마추어의 육성을 포기한다면 얼마지 않아 그 집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정치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다. 그런데 지금 힘을 가진 정당에서 청년을 키운다는 소식은 요원하다. 그냥 한, 두자리 정도 청년끼리 치열하게 물어 뜯게 두고는 청년정치를 했다고 한다. 이는 기만이다.


지자체에 청년 기구가 생기고 있다. 그런데 그냥 청년을 모아두고 적당히 흉내만 내는 곳이 많다. 위원입네 하고 위촉장은 받지만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실제 청년들에게 권한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던 우리 사회에 심각한 하자가 발생하거나 누군가의 생명 또는 재산이 위험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특히 정치는 win or nothing 인데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지금 청년 가운데 정치를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은 대를 이어 부유한 사람이거나 내일이 없는 '정치병자' 그리고 일부의 뜻 있는 인물 뿐이다. 


보통 사람, 노태우가 아닌 진짜 평범한 보통의 청년들이 정치할 수 있게 기회를 계속 주어야 한다. 당장 청년들을 대통령으로 앉히라는 말이 아니다. 작지만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리,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리에 청년을 투입 시켜야 한다. 


우리 사회는 청년을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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