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수능을 세 번째로 본 후, 스무 살의 나는 처음으로 '제주도'로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기대했던 것보다 수능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생각을 정리하고 기분을 전환할 어떤 곳이 필요했다. 그동안 여행이라고는 '가족 여행'이 대부분이었고, 내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수동적'인 여행이 많았기 때문에 여행에 대한 갈망이 특히 컸던 나는 결국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심지어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했던 스터디 플래너의 1호 버킷리스트도 '나홀로 여행'이었다. 어차피 잘 나오지 않은 수능 성적으로 계속 고민하고 좌절할 바에야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처음 혼자 여행을 준비할 때에는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이제 갓 성인이 된 상황에서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아 기대가 됐지만, '이제 갓' 성인이 됐기 때문에 여행이 잘 진행될지에 대한 걱정이 된 것이다. 나는 먼저 여행 계획을 스스로 짜야했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 했던 수동적인 여행이 대부분이었던 나는 스스로 계획을 짜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여행이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지?', '만약에 여행을 하다가 돌발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 등의 걱정이었다. 심지어 나는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 여행을 기획했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걱정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첫 나홀로 여행의 계획을 좀 더 철저하고 촘촘하게 짰다. 계획을 시간별로 자세히 쪼갰고, 그 시간에는 무조건 어떠한 장소에 가 있기로 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난 첫 나홀로 여행은 꽤 성공적이었다. 생각보다 혼자 여행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저 계획한 대로 특정 시간대에 생각해놓은 곳에 가 있기만 하면 됐고, 돌발 상황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열심히 페달을 밟는 과정에서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여러 번 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리 자전거 수리소를 지도에 표시해놨기 때문에 펑크를 때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나는, 다양한 연령대의, 그리고 다양한 성별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며 그들과 친해져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행을 오기 위해 짰던 촘촘한 계획들은 쓸모가 없어졌고,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계획에도 없던 온갖 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짜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보람차면서도 마치 모험을 하는 것처럼 스릴 있다는 점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홀로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나는 여러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떠난 일본여행 중에 방문한 가라토 시장
일본여행 중에 발견한 한 신사
사라쿠라야마 전망대에서 찍은 야경
나홀로 여행의 첫 번째 장점은 일정의 유연성이다. 즉, 일정을 내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고, 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하다 보면 일정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자유로운 여행을 좋아하고 나랑 취향이 맞는 친구랑 함께 여행을 하더라도, 무조건 어느 순간에는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행하는 친구가 원한다는 이유로 별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반대로 내가 가고 싶은 장소가 있는데 동행이 가고 싶지 않아 한다는 이유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내가 생각해왔던 계획이 흐트러지게 되고 여행에 대한 만족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게 되면 그러한 일정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다. 만약 계획했던 곳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몸이 피곤해서, 혹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가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그저 호텔의 침대에 누워 마음껏 쉬어도 된다. 또는, 일정에는 없는 곳이었는데 갑자기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경우에는 그냥 훌쩍 떠나버리면 된다.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 홀로 여행을 하던 때가 있었다. '가라쓰'라고 하는 지역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는데, 이 지역이 생각보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관광객이 별로 없어 조용한 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계획은 가라쓰 인근에 있는 어떠한 섬을 방문하는 것이었지만, 그 계획을 과감히 포기하고 여유롭게 바다를 보며 시간을 때웠다. 이처럼 굳이 계획대로 하지 않고 유연하게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나홀로 여행의 첫 번째 묘미다.
일본 가라쓰에 있던 한 해변에서
노을이 지는 가라쓰 성
후쿠오카에서 혼자 서서 구워 먹었던 고기
나홀로 여행의 두 번째 장점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나홀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여행을 하는 도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동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오히려 앞서 말한 나홀로 여행의 장점을 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마음과 생각이 맞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어느 순간에는 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홀로 여행을 할 때에는 가급적이면 최대한 혼자 다니려고 노력한다. 한편, 이렇게 나홀로 여행을 할 때면 '고독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하루 종일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연 게 열 번도 채 되지 않은 적도 있었고, 길을 거닐면서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한 적도 있었다. 처음 나홀로 여행을 했을 때에는 이 고독함이 싫어 음악의 볼륨을 크게 높여 듣기도 했다.
하지만 나홀로 여행이 익숙해지면 고독과의 전쟁이 그리 싫지만은 않을 때가 온다. 고독을 깊이 체험하면서 나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평소의 우리는 '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내 의견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추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나홀로 여행을 하게 되면 오로지 '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입을 열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않고 계속해서 걷기만 하다 보면 '생각' 밖에는 할 일이 없다. 처음에는 공상 따위의 잡스러운 생각이 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의 깊은 내면으로 빠져들게 되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나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렇게 나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한 후에 나홀로 여행을 마치게 되면, 단순히 '집단 속의 개인'이 아닌, 온전히 '나로서의 개인'을 찾게 될 것이다.
루프탑에서 바라본 인도 우다이푸르의 피촐라 호수
피촐라 호수 앞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우다이푸르의 야경을 바라보며
브런치의 글을 보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곳으로 나홀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나홀로 여행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쓰는 것이 오히려 '너만 혼자 여행해봤냐'라는 인식을 줄 수도 있어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혼자 여행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로 혼자 있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에 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섣불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나홀로 여행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가 아니라, '혼자여서 행복하다'는 순간이 분명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