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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의적 백수 Jul 23. 2020

45. 내가 했던 갑질의 언어

상대를 아프게 했던 말

이 글은 아마도 나를 위한 변명 혹은 반성문이다.


10년을 넘게 회사를 다니고, 2년 4개월의 군생활까지 포함하면 15년 여의 기간 동안 사회생활을 해 왔다. 그동안 참 많은 모진 말들을 듣기도 했지만, 참 많은 모진 말을 해 오지 않았을까. 내가 회사 생활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건 내 알바 아니고


실제로 이 말을 회사에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쓴다. 특히 꼰대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더 많이 쓰는데, 흔히들 협력사 또는 다른 부서에 요청했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킨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 툭 튀어나오곤 한다. 상대방이 이런이런 이유로 인해 일이 지연된다거나 자료 제출이 늦어진다고 하면 이런 말을 하는데, 이 말 한 마디면 할 말이 없어진다. 생각해보라. 정당한 사유라 할지라도 그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내가 알고 싶지도 않으니 내가 원하는 것을 내놓으라는 사람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나 또한 이 말이 너무도 듣기 싫고, 조직 내 사일로 현상을 심화시키는 가장 좋은(?)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무심결에 이런 말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기 싫어요 하면서 아버지와 똑같은 언행을 하는 것처럼...




나는 회사 생활하면서 참 많은 폭언과 폭설을 들었다. 지금껏 겪은 것들을 살펴보면 대다수는 임원의 자리에 있거나 작게나마 조직의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폭언과 폭설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걔 중에는 본인이 폭언, 폭설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 많으니 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내가 있던 조직에서는 옆 팀에 새로 전입 온 A차장이 있었는데, 몇 개월 뒤에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알고 보니 팀장인 B 상무의 폭언과 폭설을 견디다 못해 상위 조직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인사발령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B 상무 또한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 볼까? 전입 간지 얼마 되지 않아 아주 높으신 분이 오시는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에 쓸 영상을 급하게 만들게 되었는데, 전입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리바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전임자가 없이 1:1로 교체되는 자리인지라 막막하기만 했다. 일을 잘하지 못하기도 했는데, 영상 제작 지시와 동시에 원고를 가져오라는 지시로 급히 원고를 쓰게 되었다. 물론 작가를 섭외할 시간도, 업체를 섭외할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프로젝트 관련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C 전무의 표적이 되어 영혼까지 털리게 되었다.


그 날 들었던 폭언과 폭설은 지금껏 들었던 전체 양을 상회할 정도였다. 전입 간 조직의 특성도 잘 모르고, 영상의 콘셉트도 없으니 원고는 물론 엉망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날 들었던 말들을 대략 적어보면 '너 이 XX. OOO을 망하게 하려고 왔지?', '어디서 OO 같은 게 와서...', '이 개 XX가 여기를 망하게 할 X네.' 등등이다. 얼마나 많은 말을 들었던지 회의실을 나왔을 때 선배들이 (참고로 10여 명이었던 팀에서는 물론, 80여 명이었던 그 조직에서 가장 막내였고, 유일한 대리였다.) 한 마디씩 위로를 해 줄 정도였다. 며칠 뒤에는 모 선배는 나에게 '너 퇴사할 줄 알았다.'며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폭언과 폭설이 일상인 곳에서 지내다 보니 나 또한 그런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은 2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였다. 영상을 제작하는 협력업체에게 견적 비용의 절반부터 요구하고(물론 내 의견이 아니었지만...), 기간을 더 당겨서 납품을 요청하고(이것도 물론 내 의견은 아닌...), 끝도 없는 수정 요청을 해야 했다(이것도...). 이런 일이 쌓이고 쌓여서 임원과 협력사 사이에 끼여서 폭발하고 만 것이다. 급기야 욕설이나 비속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협력사에 조목조목 비용이 낮아야 하는 이유를 적은 장문의 메일을 보내기도 했고(그 결과 협력사 담당자가 다음 날 출근하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시도 때도 없이 협력사 담당자를 불러들이기도 했다(서울에서 용인까지...).


3년 5개월여의 시간이 흘러 나는 다시 원소속사로 복귀를 했다. 왜 사람들이 갑보다 을이 편하다고 하는지 느낀 시간이었다. 갑이 되고, 갑질을 하면 편한 줄 안다. 하지만 그거 아는가? 갑이 되어 갑질을 하는 사람이 편해 보일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또 누군가의 갑질에 의해 그렇게 갑질 하고 있다는 것을. 괴물에 의해 당신조차 괴물이 되지는 말자. 그리고 명심하라.


갑질은 갑질을 낳고, 언젠가는 을질을 당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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