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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란 Dec 16. 2020

애초에 다른 주둥이

역지사지



 여우와 두루미 이솝 우화에서 각각의 동물은 서로가 먹을 수 없는 곳에 음식을 내 온다. 접시와 호리병. 그 둘 사이에 처음부터 타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심이 있었나 아니었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2년 전 위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준비하는 과정 중에 가장 힘든 건 비위관 영양을 위한 튜브 삽입, 나의 경우는 정확히 수술 부위 배액을 위해 미리 유지하는 것이었다. 수술 후 배액량이 줄면 자연스럽게 하루 이틀 유지하다가 제거하기는 한다. 

 

  15년 전쯤 되었으려나... 신규 간호사 때의 일이다. 밤 근무는 지루하고 피곤하고 그 대낮의 부산함이 잠들어 있지만 병실 곳곳에선 잠들지 못하는 두 눈 혹은 대 여섯 개의 눈들이 지켜보는 더디 가는 시간. 낮에 그 콧줄을 삽입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중증의 치매 증상까지 동반하고 있어 그 옆을 지키며 간병하던 할머니에게도 역부족이었다. 치매에 걸리면 본래의 성격이나 습성들이 날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치매 환우들이 보이는 그 다른 모습은 꾹꾹 눌러져 있던 모습일까? 아니면 그저 인간이 가진 여러 가지 본성 그 모습들의 한 면이 드러나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소리를 지르기도 하시고, 맘대로 되지 않아 역정을 내기도 하셨다. 


  처음 콧줄을 삽일 할 때에는 환자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실리콘 재질이라지만 이물감이 느껴지는 기다란 관을 숨을 크게 참고 꿀떡 삼켜야만 목구멍으로 넘어가 위에 정확히 안착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면 자꾸 그 관이 타액과 윤활제로 쓰이던 젤을 함께 머금고 입 밖으로 비실비실 비집고 나온다. 이 과정 중에 특히나 잘 도와주지 않는 환자들을 만난 의사 선생님은 수차례 그 관을 넣었다 뺐다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수차례 의사 선생님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어렵사리 넣은 콧줄은 딱 대여섯 시간. 그날 밤 할아버지는 간호하시던 할머니가 잠시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는 사이, 너무도 허무하게 숭덩 그 줄을 빼버렸다. 그 기다란 실리콘 줄은 할아버지의 타액과 뒤범벅이 되어 침상 옆에서 초라하게 누워 있었다. 

  “아니, 낮에 그리 힘들게 넣으셨는데 그걸 빼버리시면 어떡해요."

  말은 그렇게 차분하게 했지만 이미 내 목소리도 한 톤 업 되어 있었고, 이 일을 알리고 낮에 겪었던 그 난리를 다시 번복해야 한다니 이미 피곤함이 훅 밀려왔다. 급히 다시 인턴 선생님을 호출하였고, 늘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에 젖어 있는 인턴 선생님은 까치 머리를 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무슨 일이건 되도록 미리 준비해 놓는다. 수술 준비는 무엇보다 큰 이벤트이다. 한 가지라도 빠져 있으면 그날 일정이 다 꼬여버리는 대 참사를 겪게 되므로 되도록 빨리 준비 과정을 마친다. 환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 불편한 관도 수술 직전에 꽂아 불편한 시간을 줄여주면 좋겠다만 어찌 그 시간표가 내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랴. 사실 병동에서 여러 환자들을 챙기다 보면 마음이 너무나도 급해진다. 나에게 인계된 환자들의 리스트를 다 훑고는 시간대별로 챙겨야 할 검사, 투약, 설명, 신체 사정, 기록 이 모든 과정들이 일의 효율을 위해 두세 묶음씩 같이 움직인다. 그런 상황을 아니까 큰 불평 없이 담담히 그 과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내 수술은 두 번째 순서여서 여유가 있었지만 보통은 일을 다음 듀티로 미루기 싫어하는 간호사들은 날이 밝아오기 직전에 그 일을 마치고 깔끔하게 퇴근하고 싶어 한다.  아침 일찍 남자 인턴 선생님이 병실로 왔다. 위내시경을 처음 할 때도 뭐 그리 힘들겠냐. 잠깐만 참으면 되지 하고 겁 없이 일반으로 했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관이 나의 닫힌 기도로 가뜩이나 숨 막히는 식도를 비집고 들어올 때 그 구역감, 목구멍을 타고 진입할 때  주먹을 꼭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던 그 답답한 느낌. 비수면 위내시경을 받던 5분 정도가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 듯 느껴지는 그 기분을 다시는 느끼기 싫어 그 이후에는 무조건 수면유도제를 써서 검사를 받았다. 처음 내시경을 받던 때 그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입이 더 바짝 마르고 초조해졌다. 안면이 있는 인턴 선생님이어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이미 가슴은 두근두근, 스스로 심호흡을 하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자, 이제 관이 들어갑니다. 뱉어내지 말고 꿀떡 삼키세요”

숨을 멈추고 흡! 애써 마른침이라도 삼키려고 필사적으로 애썼다. 다행히 삽입은 한 번에 성공했고 난 왼쪽 콧구멍을 통해 덜렁덜렁 긴 줄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넣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런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 자꾸만 뱉어내고 싶은 기분. 수술을 기다리는 내내 시간을 어찌나 더디게 가는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 잠깐 그 할아버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치료 과정에 필요하고 영양 공급에도 필수였던 그 콧줄을 왜 그리 허무하게 뺐었는지 왜 어른이 인내심을 가지지 못하고 순식간에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그때의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 같았다. 난 그나마 이성이 본성보다 더 우세한 상황이었지만 아마 내 의식이 떨어진 상황이었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만큼 그것을 유지하기란 너무나 고역이었다.

  그 관은 수술이 끝나고 하루 반 정도 만에 제거되긴 했지만 그 장치를 가지고 있는 내내 입으로 호흡해야 해서 난 바짝바짝 건조한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 반복해야 했고, 아 관만 빼도 내 삶을 질이 지금보다 세배는 향상될 것 같았다. 

 

  누구나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말로는 이해한다지만 그 경험을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두루미와 여우의 주둥이가 달라서 서로 필요한 음식을 먹는 방법이 다르듯이. 그러니 진짜 다 안다고 하지 말자. 저마다의 주둥이는 다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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