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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Sep 30.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이젠 행복한 비행을 해야 할 때..

어떤 비행을 원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난, 늘 즐거운 비행이라고 대답하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팀에 처음 조인하는 신입 승무원들이 있으면 난 늘 물어봅니다.

"앞으로 어떤 비행이 되기를 원해요?"..

대답은 늘 영혼 없이 동문서답이었습니다.

" 열심히 하겠습니다!"

"팀에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신입으로서 긴장되고 두려운 상황에서 그런 엉뚱한 대답이 나올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승무원이라면 입사 전에 많은 정보를 알고 왔을 텐데 그냥 신입의 입장에서 나온 그저 그런 대답이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실수하지 않도록...이라는 말에는 신입이니 조금 실수가 있더라도 잘 이해해달라는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장난기가 생겨나 다시 질문합니다.

"열심히 할 만큼 승무원 일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죠?"

"최선을 다한다고 하니 오늘 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지켜볼께요~~" 라고 말하면 신입 승무원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어둠이 몰려옵니다.

그러면 신입을 제외한 다른 승무원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난리가 납니다.


신입은 신입 다워야 합니다.

신입이 현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기존 승무원에게는 돌보아야 할 업무량만 늘어날 뿐입니다.

그래도 열정이라도 있는 게 낫습니다.

요즘은 승무원 업무를 빨리 배우려는 열정보다 어떻게 해서든 실수나 사고를 치지 않으려 조심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신입으로서의 기특함이나 애교스러운 실수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차피 실수하면서 배우는 게 승무원 일인데 너무 조심스러워만 하다 보니 선배 입장에서도 먼저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인간관계 때문에 업무 습득이 늦어지고 승객을 대할 때도 고객 불만만 피하려 하니 좋아서 선택한 승무원이란 직업에서 스트레스만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뭐래도 비행은 즐거워야 합니다.

13시간 이상을 날아가는 장거리 비행이라 할지라도 팀장은 팀원들의 든든한 리더가 되어주고, 선배는 후배를 아끼고 후배는 선배를 존중하고 조금씩 이해하다 보면 비행 자체가 즐거워집니다.

승객의 불만이 있어도 하소연할 동료가 있다면 가득 쌓인 스트레스도 쉽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즐겁게 인사하고 서로 챙겨주다 보면 정말로 비행 자체가 즐거워집니다.


그동안 늘 즐거운 비행에 대한 확고한 생각으로 인해, 다소 근무 태도가 좋지 않은 팀원에 대해 인내심을 갖고 가르쳤고,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분위기 유지를 위해 솔선수범하며 앞장섰으며, 팀 간의 끈끈한 유대를 위해 부드럽고 원만한 상하관계를 만들어 즐거운 비행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인한 일시적 비행 중단으로 비행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즐거운 비행 자체가 너무도 좋지만 더 좋은 비행은 어떤 비행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은 바로 승객이었습니다.

출발을 위해 문을 닫으면 객실 승무원과 운항승무원, 그리고 승객이 운명 공동체가 되는데 승객을 제외한 승무원들만 비행이 즐겁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문득 즐거운 비행에 승객이 포함된다면 그건 아마 '행복한 비행'이 아닐까?

그동안 승무원의 입장에서만 비행을 한건 아닐까?

팀장으로서 승객보다 승무원의 입장에서만 비행을 바라본 건 아닐까?

승객 없는 비행이 순간은 편하고 즐거울지 몰라도 과연 그 비행은 즐거워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

승무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승객인데 승무원만 즐겁다면 그건 결코 완벽한 비행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행복한 비행을 하려 합니다.

비행이 끝나고 우리끼리만 격려하고 칭찬하지 말고 비행에 끝까지 함께한 승객들에게도 즐거운 비행이 될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합니다.

승객 입장에서 기억되는 즐거운 비행이 되어야만 비로소 승무원에게는 즐겁고 행복한 비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상 즐겁고 행복한 비행의 기본은 '소통'임을 깨달았습니다.

만나서 함께 일하는 사람과의 소통 없이는 협조를 구할 수 없고 이해를 얻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소통은 직종과 상관없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서비스의 종류와 범위가 확대되고 변화하는 요즈음엔 승객, 고객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소통을 위해 인사를 하고 경청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소통으로 인해 협조, 이해 ,배려가 이루어지면 즐거운 비행이 되고, 그 즐거운 비행안에 타 직종의 동료와 고객을 함께 끌어들인다면 이제 비행은 행복해지는 겁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객실 승무원만의 즐거운 비행을 뛰어넘어 비행에 함께한 모든 사람이 행복한 비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란 하늘의 가을이 끝나기 전에 비행을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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