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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Sep 23.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넛지

거의 한 달째 코로나로 인한 도서관 휴관으로 타의에 의한 지식 습득의 길(道)이 막혀 버렸다.

읽고 싶은 책은 꼭 사보던 결혼 전 나의 습관이, 주관적 알뜰함의 아바타인 아내의 묘한 설득으로 사서 보기보다 빌려보는 방향으로 바뀐 지 어언 십수 년, 중 고딩 자녀를 둔 가장의 무게로 사서 보는 호강은 언감생심 일 년에 한두 번이다.


그나마 도서 대출은 가능했던 한 달 전과 달리, 광복절 집회의 후유증으로 인한 코로나 재확산으로 대출조차도 막혀버린 동네 도서관을 아쉬워하며 지나가는 게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책장에 꽂혀있던 먼지 묻은 예전 책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오늘 넛지(nudge)라는 책이 눈에 잡혔다.

노란색 커버에 두 마리 코끼리가 인쇄된 이 책은 한때 많은 관심을 끌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아주 작은 요소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행동경제학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행동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시작은 편견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내용이 오늘 하루 동안 읽은 내용인데, 어떤 경험에서 비롯된 편견이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 인한 실수가 올바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성에 대한 어떤 경험이 이성에 대한 왜곡된 편견을 갖게 하고, 이후 이성을 대할 때 그 편견으로 인해 만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하여 결국 잘못된 결혼에 이를 수 있다.


넛지란 이런 인간 행동의 특성을 활용하여 작은 요소의 변화나 설계를 통해 편견이나 오해로 인한 실수 없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이끄는 일종의 기술을 의미한다.


비행기에서 승객을 응대할 때 이런 인간 행동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작은 요소를 바꾸기만 해도 고객의 불만 없이 좋은 서비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타인의 지시나 명령에 대해 자동적인 사고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여 가끔 명령이나 지시에 대해 거부하거나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다.

비행기에 탑승하면 늘 '좌석벨트 매십시오' '테이블은 접어 주세요' '지금 화장실 사용은 안됩니다'라는 지시를 승무원으로부터 자주 듣는다.

대부분 잘 따르시지만 가끔 자신의 상황에 대한 배려 없이 지시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시하는 승무원의 태도를 꼬투리 잡고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인간 행동에 대한 심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작은 요소의 변화로 고객과의 관계 형성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승객에게 지시나 요청을 할 때는 긍정적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형으로 요청하면 거의 백 프로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항공기 움직이기 전에는 벨트를 매실 거죠?'

'이륙 전에는 테이블을 접어 주실 수 있으시겠죠?'

'곧 흔들림이 멈출 텐데 그때 화장실을 이용하셔도 문제없으시겠죠?'라고 요청하면, 상대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현대인의 본능(매너)으로 인해 대부분의 승객들은 내 요청을 듣게 된다.


이런 노하우(know-how)를 팀원들에게 전수했더니 말투나 태도로 인한 고객 불만이 거의 사라졌다.

이런 스킬을 얻게 된 것도 오래전 읽었던 책 '넛지'때문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경제적인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하지만 인간 그 자체는 인센티브와 '넛지'에 반응한다.

그래서 인센티브가 없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미지가 매너 좋은 긍정적인 승객으로 비추어질 수 있는 나의 질문형 요청(넛지)에 승객들은 흔쾌히 응한다.


사실 가끔 이러한 넛지를 아내에게 이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행복한 저녁에 이렇게 이쁜 마누라가 집에 있는데 집이 아닌 밖에서 술을 먹는다는 건 정말 힘들지 않을까?"라고 물어보면 언제나 아내는 경상도 사투리로 이렇게 말한다.

"시키라 치킨~~(배달시켜라 치킨)"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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