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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split Dec 18. 2020

비행기 타는 남자

감(感)

오랫동안 쉬다가 비행을 하려니 알 수 없는 기대와 긴장이 밀려 오더군요.

초유의 코로나 사태로 4개월 이상 이라는 기간의 원치 않은 휴직을 하니, 내 삶의 대부분이었던 비행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휴직 후 첫 비행 일주일 전부터 플라이트 백(BAG)을 정리하고, 점검하는 수선을 떨었더니,

사춘기 중삐리 아들 녀석이 무심히 한마디 건넵니다.

" 아빠 비행 가는 게 좋아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뻔했던 나의 대답은

'좋지 임마! 유니폼 입고 가방 끌고 비행기에 올라 승객을 맞이하는 즐거움을 넌 모를거다~'였습니다.

하지만, 대답 대신 빙그레 웃어주고, 마지막으로 여권과 승무원 ID를 확인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누구나 경험과 경륜이 쌓여 느긋해지는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행 역시 그런 종류의 경험과 경륜이 쌓여 오랜 휴식 이후에도 여유를 가지고 비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적은 숫자의 승객을 보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3시간 비행의 미주 동부 비행 편에서 15명의 승객을 태우고 가려니 그동안의 비행 감각에 잠깐 버퍼링이 생겼습니다.

적정한 식사시간 시점과 오랜 시간의 휴식 시간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지...

그리고 비대면 서비스는 불가하지만 가급적 승객과의 접촉을 지양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서비스를 해야 할지 도통 감(感)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고객 만족을 위한 적극적이고 세심한 서비스보다, 고객의 요청이 있을 시에만 반응하고 가급적 접촉을 지양하기 위해 담당구역에서의 스탠바이 위주의 서비스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예전처럼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입이 아파 죽을 뻔하였습니다.

갤리에서 오랜만에 만난 팀원들과의 수다는 몇 시간이 지나도 끊기질 않았고, 애꿎은 커피만 들이켜 마시다 보니 정신은 호텔에 도착해서도 맑음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신없이 바삐 일하던 코로나 이전의 비행 감각이 무료함의 버퍼링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4개월 휴직 후의 첫 비행을 그저 편하게 끝내 버렸습니다.


비행이란 적절히 긴장할 만큼 바빠야 하고 힘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래 쉬다 보니 인간은 노동 없이 살 수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데 15명의 승객을 태우고 13시간을 비행해보니 더 절실하게 노동의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달간의 순환 비행 근무를 마치고 다시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그나마 백신 접종의 소식을 들으며 비행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탑승이 시작되면 밝은 표정의 승객들이 각자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다니며 비행의 분주함을 알려 줍니다.

기장의 이륙 시그널을 시작으로 승무원들은 더 바빠지기 시작하겠지만, 몸이 기억하는 비행의 감(感)은 여지없이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정상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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