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ck split
Jan 05. 2021
벌써 21년이 되었다.
내가, 아니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시던 할머니가 장수(長壽)라는 축복(?)을 받으시며 돌아 가신지가..
집안의 어른이시라는 대우를 받으시며 당시에 보기 드문 꽃 상여에 타시고 장지로 떠나시던 할머니를 따라서 가족 및 집안의 친지들 모두 시골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한데 벌써 20년이 다 되었다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저녁 무렵에 내 방에 들르신 할머니의 손에는 손톱깎이가 쥐어져 있었다.
엷은 미소와 낡은 저고리의 나의 할머니는 그렇게 손자와의 시간을 즐기셨다.
막내 손자여서일까? 아니면 할머니께 고분고분하던 손자였기 때문일까? ... 내 위의 큰 형님과 세분의 누님을 제쳐두고 늘 나에게만 당신의 발톱을 맡기셨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 4학년 졸업을 앞두고도 나는 할머니 발톱을 깎아드렸는데, 졸업하자 승무원이 되면서 할머니의 발톱 깎는 감사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가끔 쉬는 날 집에 들르면 깎아드렸지만 결혼 이후 다음 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할머니의 발톱을 누가 깎아드렸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할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는데 , '나이 듦'은 '단단해짐'이라는 것.
어르신들을 잘 살펴보면 피부가 거칠어져 있음을 느낀다.
가끔 탑승하시는 노인분들을 부축하거나, 안내하기 위해 손을 잡으면 까칠함과 동시에 단단함을 느끼곤 한다.
근육의 단단함이 아닌 피부의 단단함은 바로 나이 듦의 상징이니까..,
그리고 생각도 단단해진다.
소위 말해 꼬장꼬장해진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쌓아온 경험이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무조건적인 고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유연성이 떨어지는 판단으로 가끔 젊은 사람과 부딪히기도 하고 혼자 외로이 일을 밀어붙이기도 한다.
할머니의 발톱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두껍기도 했지만 단단하기도 했기 때문에 한번 자리 잡고 앉아 열 발가락의 발톱을 제대로 깎으면 30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난 그 일이 싫지가 않았다.
이상하게 할머니의 발이 더럽다는 느낌도 없었다.
엄지발가락이 가장 두껍고 단단해서 깎기가 어려웠는데, 끝나고 나면 묘한 성취감도 느끼곤 했다.
이제 나도 내 몸을 관리하면서 가끔 까칠해진 피부와 손톱, 발톱의 예전과 다름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할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 느끼는 정도의 단단함에서 생각마저도 단단해질까 두려워하기도 한다.
할머니 발톱을 깎으며 익숙해진 그 느낌 때문인지 몰라도 비행기에 탑승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응대가 나는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들 몸에서 나는 노인의 냄새조차도 나에겐 내 할머니의 냄새로 여겨져 가끔 미소까지 지어진다.
나이 듦이 단단해짐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인진 몰라도, 멈추지 않는 시간은 계속 우리를 두드리며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건 사실인 거 같다.
이젠 웬만한 일에 상처도 받지 않고 놀라지도 않는다.
이런 단단함이야 좋은 거지만 꼬장꼬장해지는 고집만큼은 단단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승무원 한 팀에는 나와 같은 연령대에서 저 아래 20대 초반의 승무원까지 있다.
그들과 함께 잘 지내려면 단단해짐에 있어서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 발톱만큼은 아니지만 조금씩 조금씩 단단해지는 내 발톱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