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같은 사위가 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다.’
회사 상사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결심했다. 상사라고는 해도 6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데다가, 그저 ‘막내, 막내’ 하며 팀 내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던지라, 어려운 것도 없이 밥 먹고, 쇼핑하고 수다 떨며 어울려 다녔다. 동네 언니나 다름없었다. (실제 ‘언니’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언니 아버지의 부고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25살이었던 나는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의 부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도 이제 겨우 서른을 지나 온 것인데,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을 겨우 추슬러 들어간 장례식장에는 형부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임신 초기였던 언니가 걱정되어 우선 집에서 쉬라고 했다고 한다. 형부의 단단한 얼굴에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딘가 입안이 씁쓸했다.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 하게 되었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은 누가 지키고 있을까?’ 그때부터 나의 ‘아들 같은 사위’ 콤플렉 스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연애를 끝내버린 이유의 30% 정도는 그 친구가 우리 부모님에게 ‘아들’ 노릇을 할 사람이 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소개팅을 나가서도 ‘아들’ 역할 가능성에 따라 점수를 매겼 다.
‘골프를 좀 친다고 하니 아빠와 라운딩이 가능하겠군. 플러스 1점’
‘가족들이랑 사이가 좋은 것 같군. 우리 집 가족들이랑도 잘 어울릴 수 있겠어. 아니다. 우리 엄마,아빠는 안챙기려나? 일단 보류.’
그놈의 아들. 이러니 당연히 지금까지도 혼자일 수밖에 없 겠지.
그러다 우연히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비혼>(김애순, 이진송 저)의 작가님 강연을 듣게 되었다.
“효도는 내가 하면 돼.”
특별한 것 하나 없는 문장이었다. 긴 터널을 헤치고 나온 것처럼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는 듯했다. 그래, 당연한 말 아 닌가. 효도는 딸인 내가 하면 되는 거지. 왜 굳이 효도해줄 람을 찾으려고 했을까. 그제야 진실이 보였다. 작가님은 아 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너희 고모처럼만 하면 효도하는 것이다. 이모처럼만 하면 바랄 것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형제들이 조카들에게 해준 말이다. 형제들이 인정해 준 효녀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들(SON/썬)이나 내 이름(SUN/썬)이나 영어로 하면 어차피 똑같은데, 진짜 아들도 아닌 사위가 굳이 필요할까? 썬(SON) 말고 썬(SUN)이가 여기 이렇게 듬직하게 있는데 말이야!
아빠, 엄마는 반려자를 만나 가족을 꾸리고 안정된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배웠을 것이다. 나중에 당신들이 떠나고 혼자 남겨질 때 외롭지 않겠냐는 끔찍한 말 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딸에 대한 애틋함 때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조금 불안정해 보이고 어긋나 보일지라도 언제나 딸의 길을 응원해 주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빠는 언제 사위랑 골프 치려나.”
"아기만 낳으면 아빠가 다 해준대. 걱정하지 마.”
이 두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아빠, 그래 도 가능성은 열어둘게. For YOU) ‘아빠’의 모습이 정답이 하나가 아니듯, ‘딸’의 모습도 다양하다는 것을 아빠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지 나만의 ‘딸’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우겨보고 싶다.)
자랑하고 싶은 사위도 손주도 없지만, 아빠를 (당연히 엄마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부족하지 않게 가득 채워주고 싶다. 언젠가 누군가 '선영이처럼만 해봐라. 선영이 같은 딸만 있다면 대통령 사위가 와도 부럽지 않겠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일단 전화부터 친절하게 받아야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