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연인에게 듣고 싶은 약속이 있다. 아니 함께하고 싶은 약속이 있다.
우리가 서로의 손가락 사이를 마주 걸어 잡은 지 벌써 두 해가 지나고,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어가며 또 한 살을 먹는다. 그 사이 이런저런 일들이 흘러갔고, 우리 삶의 형태들도 변해갔으며, 서로의 모습들도 얼마간은 달라진 것 같다. 우리 사이 관계도 그렇게 그렇게 새로운 국면들을 맞이해 가겠지. 그 모두가 부디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는 것이어야 할 텐데….
우리 사이 관계가 더 좋아진다는 건 뭘까? 어떻게 된다는 의미일까? 연애란, 사랑이란, 한동안 활활 뜨겁게 타오르던 불길이 서서히 사그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식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들 하던데. 그 불길이 식어가지 않는다면 그게 도리어 더 위험하다고도 하던데. 우리 삶에 그렇게 끝없이 타오르기만 하는 것은, 그래서 다른 삶의 모든 것을 그 끝을 가늠하지도 않으며 일단 밀어 넣고 집어삼켜 타오르게만 하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삶의 일부라고 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서서히 식어갈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게 식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도저히 서늘해져 서로의 손가락을 마주 잡을 수도 없게 될까? 아니면 그렇게 냉랭해진 채 이제는 더는 맞닿지 않더라도 그저 옆자리만 지키며 머물기만 할까? 그렇게 돼버리고 마는 상황이 결코 좋아진 거라 말할 순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최소한 그런 상황으로까지는 가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일까. 일말의 온기는 남아 있을 수 있게, 미지근하더라도 그저 체온에 지나지 않더라도, 서로 닿을 수는 있을 만큼으로는 근근이 버텨가는 정도가.
그러한 정도를 받아들이거나 만족해하지 않고 우리 관계가 더 좋아지길 바란다는 건, 이미 인간으로서 한낱 생물로서 피할 수 없는 결과를 굳이 피하려고 애쓰는 걸까? 감히 그러한 숙명과 자연을 거스르려 한다면, 그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극복을 향해 최소한 자기 자신을 산화할 수는 있을 만큼의 의지는 불태워야 할 텐데…, 어떠한 보장도 없이 어떠한 보상도 없이, 과연 그 최소한을 우리가 맞춰낼 수 있을까. 너와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인간의 행위란 인간의 삶이란, 또 그러한 의지로 시도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그 끝이 어떻게 되든, 실패든 성공이든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닌 애매함이든,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판단하기 어렵거나 이것저것 난립하여 파악할 수 없는 혼란함이든, 그러는 와중에도 인간의 행위는 행해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은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행위와 삶은 그 순간 순간 속에 숨 쉬는 인간의 의지로서 시도로서 채워지고, 그 의지와 시도는 바로 지금의 순간들을 불태우며 지금의 자신을 산화시키며 다시 또 다음의 순간들을 향해 가지 않는가.
약속이란,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의 순간을 불태우며 다음의 순간까지도 태워가며 그 너머의 그 약속이 묶어주는 그 순간들까지 그 약속이 함께하는 저 너머까지도 활활 태워가며 식어가지 않는 우리 삶의 불길이지 않을까? 우리 삶을 우리의 삶답게 만들어 주는 바탕이 아닐까? 그러한 약속에 스스로를 태울만한 의지가 필요하다면, 나는 그러한 의지가 바로 나의 삶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