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 Apr 16. 2019

비틀림과 솔직함

집에 발생한 우환으로 이번 주는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한다,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미 그 전 주부터 시작된 우환이었고, 하루하루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었다. 특히나 그날은 그 불거진 갈등의 그야말로 마지막 결단을 향해 치달아 가는 시점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도저히, 세미나 준비를 한다며 집중하여 책을 읽거나, 세미나에 참석한다며 장시간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 것 같은 상황이었다.


짜증과 분노, 이 갈등이 최종적으로 어떠한 결말을 가져올 것인지 전혀 확신할 수 없기에 휘몰아치는 불안감, 최소한의 방어나 지켜야 할 것들은 놓쳐버리지 않기 위해 절박해지는 계산, 그럼에도 진절머리 나고 지쳐버려서 어떠한 악조건으로 끝나든 개입하지 않고 다 포기하며 내던져 버릴까, 그냥 눈감아버리고 싶은 마음, 왜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또 누적해서 겪어야만 하는지 퍼부어 쏘아댈 대상 없는 원망과 한탄, 그러면서도 이 과정을 좀 더 냉정하게 단호히 잘 마무리 지으면 그제야 비로소 이제까진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안정감이 찾아올까, 막연히 다짐하는 기대. 이렇게 뒤죽박죽 뒤섞인 복잡함 속에서 그렇게 그 우환을 온몸으로 겪어나가고 있었다.


가족 간에 불거진 갈등으로 빚어진 우환. 사소하다면 사소한 사건으로 불꽃이 튀었지만, 쌓여있던 긴장과 억눌렀던 불만, 또 각자가 그리 마음의 여유는 없는 상태에서, 늘 그래 왔듯 그 한 사람, 자신의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제까지 그 화를 더욱더 거세고 위협적으로 퍼뜨리며, 그저 상대를 굴복시키려고만 해왔던, 그 한 사람의 고질적이고도 버거운 행동들은 그 상황을 더 이상 그저 단순한 갈등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키워버렸다. 분명 어느 정도에서 멈출 수 있었고 재정비할 수 있는 지점들이 순간순간 있었음에도, 이제는 돌아설 수 없는 경계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구나, 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준비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가족의 해체. 그 마지막 결정을 하기 위하여 그날 밤 다시 만나 이야기하자, 시간을 정했었다. 홀로 떠나갈 자신을 대신하여, 아직도 막막히 남은 채무와 갈수록 전망이 불투명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가게 일과 그에 따른 모든 복잡한 과정과 상황들까지도 책임지며, 그럼에도 결코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겠다는 각서를 써오라 요구받았다. 그래서 그러한 각오를 다졌고 그러한 결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래야 마침내 풀려나는 것이 아닐까, 마음 편히 일상을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관심을 갈구하며 끌어보고자, 비틀린 행동들로 늘 조마조마하게 일상을 휩쓸어버리는 원인에게서 드디어 벗어나는 것일 테니.


하지만 그 모든 과정들 역시 일종의 위협에 불과했었나 보다. 자신의 화를 폭발시킬 때마다 협박처럼 어쩌면 자해처럼 너무도 쉽게 입에 올렸던 가족의 해체를, 이제는 도저히 견디기 힘드니 차라리 감수하겠다, 단념한 마음들이 냉정히 받아들이려 하자, 그제야 비로소 자신의 밑바닥, 비비 꼬여 뒤틀리게만 표현해왔어서, 정작 자신도 알아차릴 수 없었던 그 본심을 직시하게 된 건지, 이미 닫혀가는 다른 마음들을 되돌리기 위한 갖가지 설득과 호소와 애원, 정제되지 않았고 두서는 없었지만 그래도 날것 그대로의 진심이 떨리는 듯한 갖가지 감정들의 파랑, 그 안에 위태하면서도 난처하면서도 절박한 그 마음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다음 날 저녁, 다시 이야기를 하러 이번에는 카페에 앉았을 때, 어머니도 나도 약간은 이미 마음이 누그러져 버린 상태였던 것 같다. 단단하게 세워놨던 벽의 윗단이 조금은 무너져 내려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어 버린 상태, 아니면 그 벽에 세세한 틈이 생겨 그 벽을 투과해 들어올 수 있게 된 상태, 조금은 더 약해진 상태, 공격받기도 쉬워졌지만 공감할 수도 있게 되어 버린 상태였던 것 같다. 모두 다 전날 밤 아버지의 그 날것 그대로의 감정과 호소를 대면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 얼굴과 행동에 공감해 버렸기 때문이다. 짜증이나 분노나 쌓여왔던 감정은 여전했지만, 그럼에도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던 연민이랄까, 말이나 표현이 진솔했다기보다 그 어설프고 중언부언하는 중에서도 그 모든 행동들을 아울러 전해지는 솔직함이 있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마음에 남았고, 잔잔하게 진동하며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이번에는 조금 더 많이 달라지시겠구나 싶었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사람은 또한 어쩔 수 없이 변하기는 한다. 변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어머니와 나는, 카페에 앉아서 또 그 나름의 반성과 결심과 계획들을 들으며, 이번만 넘어가자,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 솔직함, 그 날 것인 듯 전해졌던 그 드러남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해석과 합리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