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자기 스스로가 어떻게 해석해낼 것인지, 그 해석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이끌어나갈 것인지, 그런 해석들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다시 한번 떠오르며 짧게나마 정리해 보자 마음먹게 된 계기는 연인과의 대화였다. 연인께선 머나먼 타국에 출장을 가 계시는데, 그 몇 달간의 출장을 기대하며 계획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보내고 계시며, 그래서 마음고생이 많으셨다.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도중에, 뭔가 잘못되었단 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급하게 조정하려 해 봐야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그 걸쳐있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 속에서 마음 다잡으며 애쓰며, 하는 데까지 시도해보다 결국엔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모든 과정을 다 겪으시는 것 같았다.
정작 기대하며 예상했던 실험실과 연구 과정에는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었지만, 그러면서도 이렇게 스스로 공부하며 혼자서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연인께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에 안쓰러우면서도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그 정도로 해석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싶다’ 말했었다.
그런데 뭔가 나의 그 말이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렸고, 그래서 몇 마디 더 붙여 보완해보려 했는데도, 의미가 의도하는 대로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고, 계속해서 빗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주어진 상황, 스스로가 살아내고 있는 삶. 그 어느 것이든 해석을 한다는 건 해석할 의미가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상황에는 삶에는, 과연 어떠한 의미들이 있을까, 과연 어떠한 해석이 필요할까.
일단은, 스스로의 삶에 대한 해석이 자기 합리화와는 달라야 할 것 같다.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고, 나는 연인의 그 말들이 그저 합리화는 아니었으면 좋을 텐데,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너져가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탱하기 위해, 자신의 상황을 어쩔 수 없이 합리화하며,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조금은 더 견딜만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기 합리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저 내 바람이었다. 합리화가 아니라 해석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해석이나 합리화나, 그 어떤 의미를 찾거나 만들어내고 혹은 분별하여 선택하기도 강화하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의미든 찾아내거나 만들어내고, 그에 따라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그 상황이 제시하는 걸까,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걸까.
거칠게나마 생각을 정리하자면, 그 두 가지 정신활동은 모두 다 이미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추구하는 것일 테다. 하지만 해석이 조금 더 그 상황과 자기 자신 사이의 교류와 순환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라면, 합리화는 스스로에게 조금 더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때에든 그러한 자기 합리화가 필요한 순간들이 분명 있겠지만, 그래서 스스로를 보전해야 할 시기는 있겠지만, 또 어느 때에는 주어진 상황과 전혀 동떨어지게 되는 순간들도 있지 않을까. 그 역시 극단적으로 스스로를 위해야만 하는 순간이라면 나쁘다 할 순 없다. 그래서 합리화가 아니라 해석이길 바란다는 내 마음은 그저, 연인께 닥친 그 상황이 연인께 그러한 자기 합리화가 필요할 만큼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 대한 연인의 대처가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자기 위주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자기 마음속의 힘을 소모시키며, 그 의미를 강화해내고자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적절한 의미를 발견하고, 그래서 그 의미를 발전시키며 자신의 의미로 해석해낸 것이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과 그러한 결과였기를 기도한다는 뜻이었다. 부디 그 상황이 나의 연인께 그리 가혹하지는 않았기를. 그리고 또한, 우리는 그러한 해석을 통해서야 조금 더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