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중에서도 타자에 대한 윤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철학자 레비나스의 책을 오래 읽고 있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부담은 쌓이는 것 같다. 이 철학자의 사유를 읽으며 이해하며, 많은 부분 공감하기도 설득당하기도 하기에, 그 정도로 가까워졌다면 어느 정도는, 그 사유가 그저 머릿속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도 삶으로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런데 그렇다고 그 철학자가 구성한 사유 체계의 요소들 하나하나에 모두 다 공감하는 것은 아니기에, 선택적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사유를 오래 읽었다 해서 굳이 내 삶이 그와 비슷하게 닮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 철학자가 자신의 사유를 펼쳐내기 위해 끌어오고 재해석하며 제기하는, 그 모든 생각들 개념들 사태들에 대하여, 전반적으로는 그 뜻에 찬동하면서도 그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있고, 아마도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러한 찬동과 거부 사이에서 자기 나름의 생각을 또 정립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으니까. 그렇다면 결국에는 그 철학에 영향을 받은 내 사유가 다시 남을 뿐이고, 그 영향이란 닮아지는 걸 수도 틀어지는 걸 수도, 혹은 이도 저도 아닌 영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을 테다.
그러한 면에서 한 사람이, 자신이 믿는 종교를 대하는 태도와 자신이 공부하는 철학을 대하는 태도에는, 사뭇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이 유명한 성경 구절은, 믿음에 관하여 정말로 탁월하게 정의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말에 따르자면 믿음은, 그 대상에 대하여 이미 확신하면서도 다시 확인해나가는 작업이다. 그러하기에 믿음은 그 대상이라던가 그 대상이 뜻하는 가치나 삶에 대하여, 이미 어떠한 긍정을, 일종의 수용을 깔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 믿음의 대상에 대하여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새롭게 열리는 의미가 있다 해도, 그 의미에 먼저 나를 맞춰가 보려 애쓰지, 그 의미를 내 기준에 맞춰 의도적으로 재단하거나 절충하려 들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철학의 작업은 그 기초에서부터 나의 주관을 바탕으로 하는 것 아닐까. 어렴풋하든 긴가민가하든 일단은 내 생각이나 내 느낌이 있어서, 그러한 나의 것과 내 주위 것들을 비교하며 판단하며, 나의 사유를 조금 더 구체화하고 정립해나가는 것 아닐까. 거창하게 나의 사유라 할 만큼의 뚜렷한 체계는 아직 없다 해도, 최소한 내 마음에 듦과 들지 않음, 끌림과 끌리지 않음, 그래서 피와 아를 식별할 수는 있지 않을까.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그 무수한 사태들, 개념들, 사유들에 대한 나의 반응으로서의 내 생각이, 하나의 체계를 이룬다거나 어떠한 일관성을 갖춘다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나 스스로 끊임없이 반성하며 노력해야 할 작업일 테지만, 그 마주한 하나하나에 대하여 드러나는 나의 즉각적 반응은, 기존의 내 생각과 대응하며 어느 정도는 분명히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니까. 그러하기에 공부하는 대상과 나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앞선 긍정과 수용보다는 경계와 탐색이 먼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닮아가기에는 오히려 더 어렵지 않을까.
다만 오래 읽고 또 오래 알아서, 그 철학자의 사유가 이미 내 생각 속에 익숙히 녹아든 상태라면, 어느 정도는 일치에 대한 부담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내가 그 철학자의 사유를 오랜 기간 공부해왔기 때문이라기보다, 이제는 영향받아 어떤 식으로든 변화한 바로 내 사유와 내 삶 사이 관계에서 불거지는 문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역시 한낱 인간으로서,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가 다 일관적일 수는 없을 테니 그 한계를 인정하며, 다소 미흡하지만 장차 노력해가야 할 부분으로 남겨놓을 수도 있을 테고…. 어떤 지향점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공부의 내용을 내 사유 속으로 깊숙이 받아들였다면. 하지만 그 역시 그 철학자가 자신의 삶 속에서 그 사유를 정립하며 바라봤던 그 구체적 지향점과는 이미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보며 걷는다 해도, 들판의 좁았던 그 흙길은 어느새 다지고 정비된 넓은 도로가 되고, 다시 또 아스팔트로 포장된 차로 옆 인도가 되어버렸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