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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리슨 Nov 25. 2022

<죽이기 전까진 죽지 않아>를 출간했다




카라칼의 2022년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돼버린 <죽이기 전까진 죽지 않아>를 만드는 일은… 고생스러웠다. 뭐, 어느 책 작업이 고되지 않겠느냐마는… 정말이지 이 책은 마니마니 힘들었다. 저자가 탁월한 시인인 덕에 멋진 문장들을 (<재즈가 된 힙합>에 이어) 또 한 번 만나볼 수 있어 즐거웠지만 그런 만큼 한국어판의 번역가와 편집자는 아득한 고생길…을 걸었다. 산문시라고 해도 무방할 글들이 한 아름씩 자리한 서른아홉 편의 영문 에세이를 한국어로 바꾸어내야 하는 번역자로선 평소 작업하던 문학 번역의 갑절에 가까운 품이 들었을 테고, 그 번역문을 다시 독자에게 가급적 정확한 구문으로 세공해 보여줘야 하는 편집자로서도 꽤 많은 수고가 들었다. 시집을 번역해서 펴내는 일만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은 아니다.


하닙 압두라킵은 비유법을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작가다. 자신이 토해낸 문장들에 취하거나 잡아먹히지 않은 채 가려는 길을 묵묵히 걸어갈 줄 아는 단순한 능력 또한 그의 강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가의 글도, 때론 그런 글이라서, 번역이라는 작업을 거치면 아무리 애쓴다 한들 미묘하게 꼬이거나 나자빠지기 일쑤다. 번역이라는 노작에는 자연히 손실이 발생하고 과잉이 덧입혀지는데, 이 작업물을 균형 있게 만드는 일은 편집자의 몫이다. (나는 번역가의 실력을 손쉽게 평가하는 독자들을 아직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번역이 잘됐는지 못됐는지를 어찌 독자가 알 수 있지? 순수한 번역문을 마주하는 이는 오로지 편집자이고, 우리가 사 보는 책의 내용은 편집자가 선택하고 가공한 번역문이며, 그래서 잘못에 대한 일차적 책임도 편집자에게 있다고 보기에.)


책과 편집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역문이 까다롭게 읽힐 때는 원문이 품은 본질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한국어 독자에게 좀 더 쉽고 빠르게 다가가는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압두라킵의 역고를 대조하고 만지는 일은 그조차 만만치 않았다. 책을 하나의 국가로, 책에 실린 에세이 한 편을 도시로, 문장들을 건물이라고 상상해 보면, 각 도시에는 1층짜리 집도 많지만 2층, 3층, 때론 지상 5층에 지하 3층짜리 건물도 있다. 공들여 들여다보지 않으면 문장에 깃든 공간들을 놓치기 쉽다. 나는 실력이 다소 달리는 편집자라서 원고를 보는 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고 여전히 아쉬운 점들이 보이지만… 어찌 됐든 책은 나왔다. 물론 내게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올 한 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는 간간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지만. 속도는 늦더라도 이 아름다운 책이 제 독자를 차근차근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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