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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ed thoughts May 09. 2024

사서 맘고생 2

2024년 5월 8일 수요일 - 86일 차

☀ 봄 재킷을 입기에는 춥고 겨울 점퍼를 입기에는 과한 날씨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를 타고 밴쿠버에 간다. 적어도 세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좋은 자리에 앉는 게 중요하다. 나는 큰 창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첫 줄을 좋아한다. 이 버스는 지정좌석제가 아니라 버스 기사 아저씨가 버스표를 확인하는 순서대로 자리를 고르게 된다. 누가 어떤 자리를 고를지 알 수 없으니 적어도 두 번째로 버스를 타야 앞자리를 사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버스 시간 30분 전부터 터미널에서 버스 기사 아저씨를 기다린다.


 오늘도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밴쿠버로 가는 버스가 세워져 있었다. 남자 한 명이 버스 문 앞에, 여자 한 명이 애매한 곳에 서 있었다. 둘 다 밴쿠버에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여자 뒤에, 남자와 여자 사이의 거리만큼을 두고 섰다. 두 명만 있을 땐 확신할 수 없었는데 세 명이 되니 제법 줄 같아 보였다.

 여자는 계속 애매하게 서 있더니 통화를 하면서 내가 완성한 줄을 이탈했다. 그래서 나는 슬금슬금 남자와의 거리를 좁혔다. 누가 보면 두 번째로 온 사람인 것처럼. 하지만 여자가 다시 돌아오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있게.

 얼마 뒤 여자는 아예 다른 데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맘이 조금 편해졌다. 눈앞에서 앞자리를 놓칠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이었다. 그사이 내 뒤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겼다. 확실한 줄이었다. 

 여자는 다시 돌아왔다. 두 번째 자리를 되찾지도, 줄의 맨 끝으로 가지도 않았다. 내 오른쪽 뒤에 또 애매하게 서 있는 것 같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리를 양보해야 할 것 같아 뒤돌아 보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왔다. 서류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아저씨에게 ‘내 표를 두 번째로 확인해 주세요’라는 눈빛을 보냈다.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됐다. 애매한 그 여자는 내 뒤로 버스를 타서는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그 여자가 뒤에서 뭘 하는지 내 의자를 자꾸만 뒤로 당기는 것 같았다. 무릎이나 발로 툭툭 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이 자리를 차지한 데에 대한 복수인가 싶게 계속 나를 불편하게 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뒤에서 요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무슨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건 확실했다. 맛있는 냄새는 아닌데 또 역겹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신경 쓰였다. 폐쇄된 공간에서 뭔지 모를 냄새를 계속 맡고 있으려니 불쾌했다.

 이로써 앞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 같았다. 마음이 편해졌는지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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