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레벨업

신께 바치는 보물, 정직

by Hildegart von Bingen

넷플릭스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을 봤다.

책이나 영화 ‘다시보기’는 처음 볼 때와 달라진 관점으로 새롭게 인지하는 부분이 있어서 반복해서 보는 편이다. 기간을 두고 다시 보면 경험과 고민만큼 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어져 내가 어느 부분에서 갈등했는지도 보이고, 갈등의 중심점이 옮겨진 것도 느껴진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처음 접하는데도 ‘다시보기’ 하는 기분이 든다. 안도한 상태로 간접 경험을 하다 보니 내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주인공이 레벨업 능력을 얻게 된 건 파르테논 신전에서 시작된다.

신전의 규율은 첫째, 신께 경배하라. 둘째, 신을 찬양하라. 셋째, 신앙심을 증명하라.

그들은 신께 경배하기 위해 무릎을 꿇는다. 신은 찬양하기 위해 무기를 든 석상이 아니라 악기를 든 석상 앞에 서고, 주인공은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노래하는 석상 앞에 서고, 석상은 찬가를 부른다.


신앙심을 증명하기 위해 제단 위에 서지만 사람들이 도망가는 동안 주인공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고 한다. ‘다행이다. 죽는 게 나 하나여서.’ 하지만 이건 위선이다. 위선으로는 신앙심을 증명하지 못한다.


신께 바치는 보물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이고, 신께 바치는 제물은 무력함이다.

마침내, 죽음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외친다.

‘항상 득 보는 건 자신만 챙기는 놈들뿐이지! 나도 살아서 돌아가고 싶어.

죽는 게 나뿐이어서 다행이라고? 웃기지 마! 이 위선자.

싫어. 죽고 싶지 않아.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장면 전환.

주인공은 시크릿 퀘스트 ‘무력한 자의 용기’ 게임 플레이어가 될 자격을 획득한다.

‘강자가 되기 위한 준비’라는 첫 일일 퀘스트가 주어진다. 팔굽혀펴기 100회, 윗몸일으키기 100회, 스쿼트 100회, 달리기 10km. 전부 완료하지 못하면 페널티가 있다는 경고를 무시한다. 죽음 속에서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하고 아쉬워하던 마음은 사지육신 멀쩡해지자 간절함이 사라지는 게 고통에서 빠져나와 한시름 돌리면 무기력으로 리셋된다.

페널티는 독 이빨 거대 모래 지네에게서 4시간 동안 살아남기다. 하루에 주어진 능동적인 운동량을 괴수에게 쫓기는 생존의 공포에 떨면서 그 시간을 채우는 것과 같다.


주인공은 실전에서 능력치가 점점 올라간다. 새로운 검을 얻어 여러 실전을 거치며 검이 점점 닳을 때도 도구의 쓸모가 다 하면 새로운 레벨업 도구를 다시 획득하기도 하고, 방심, 자만, 착각에 마비되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기도 한다.


시리즈를 다 본 건 아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모든 병을 치유하는 물약인 ‘생명의 신수’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악마성에서 획득 가능하다는 부분이다.

약하니까 무시당한다면서 강해져야 한다고 용기를 내는 모습이 나중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각성할지 모르지만, 무력한 것보다는 분노가 높은 에너지라는 말처럼, 어떤 감정이든 필요한 시기가 있을 뿐이지, 쓰면 되고, 안 되고는 없다는 걸 다시금 새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테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