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아주 오래전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강렬한 영상과 스토리가 감정을 자극했다. 나를 사랑해 줄 남자를 찾아다니며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희생이라는 가면 밑에 숨은 비참한 신세가 나와 같다며 통곡했었다. 그 이후 한 번 더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마음은 아프지만 ‘네 인생은 끝난 게 아니야.’,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 제목이 <Memories of Matsuko>인데, ‘사람들이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대사를 가져와 한국 제목을 지었구나, 생각했다. ‘혐오스런’이지만 그 안에 갇혀 있는 아픔이 공감돼 누군가 혐오스럽다고 해도 내 인생을 사랑해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며 마츠코를 공감했다.
마츠코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면 매번 ‘나는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지금 와서 보니 난처한 상황에서 짓는 이상한 표정도, 인생이 끝났다는 말도 ‘이런 모습으로는 누구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거야. 이제 사랑받기는 글렀어.’라는 뜻이었다.
이번에 다시 보니, 마츠코는 사랑받고 싶어 자신이 무슨 선택을 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꿈에 젖은 채 자신의 시나리오에 취해 인생을 함부로 대한다. 스스로 오해하고, 섣부르게 단정하고, 오버한다. 자기 안의 자신을 혐오했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거다. 영화를 보면서 꼴 보기 싫은 마음도 들었다. 혐오스럽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지.
그때도 그렇게 느꼈을 거다. 그러나 나와 동일시하는 마츠코를 혐오스럽다고 인정하면 어디에도 내 편 하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라도 마츠코를 포장해 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혐오스럽다. 내가 나를 혐오하는 마음이 있는데, 내 편 하나도 없을까 봐 겁먹어 나를 변호하는 건 비겁하다.
나를 혐오하는 마음이 내내 있었을 거다. 그 원망의 시선을 상대는 경멸로 받아들였을 거다. 한풀이하듯 배설해 놓고, 스스로는 그런 마음을 얼른 숨기고는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무마하며 나아가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한해살이풀처럼 힘없이 쓰러질 것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양한 마음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 혐오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내가 나를 버리지는 않을 거니까. 그러고 보니 <나 혼자만 레벨업>에서 ‘생명의 신수’ 재료를 ‘악마성’에서 획득하라는, 그 말이 계속 맴돈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의 혐오스런 부분을 인정하듯 악마성을 드러내라고,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악마성이라고 해설 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고, 거기에 생명의 신수를 만들 재료가 있다고 알려주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목소리에서 내내 느껴진 가식의 포장지를 벗겨보기도 했다. 공격성 없는 부드러운 톤의 말투가 어딘지 맥 빠진 느낌이어서 갸우뚱했는데, ‘악마성’을 인식하기 시작하니 목소리가 힘을 찾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놓아버리라고 하고, 힘을 빼라고 하는 건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놓아주라는 거지, 나사를 하나 빼라는 게 아니다. 그래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영화로 나를 이끌어 준 것인가. 다른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사랑 감각을 회복해 줄 열쇠일까도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