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이끄는 감각

치유하는 글쓰기

by Hildegart von Bingen

감정은 감각작용 중 의식의 해석이다. 아름답거나 산만하거나, 감미롭거나 시끄럽거나, 향긋하거나 구리거나, 달거나 쓰거나, 부드럽거나 거칠게 느끼는 것처럼 마음의 ‘어떤’ 해석이 나를 행복한 상태로 이끈다. 그러나 쓰라린 고통으로 해석할 땐 마음에 통증이 느껴진다.


통증은 신체 이상을 알리는 경고 신호로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우리는 몸의 통증은 자연스럽게 느껴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감정을 통증으로 받아들이는 건 낯설어한다. 감각적 통증이 있는 것처럼 감정도 통증이다.


통증을 느끼는 곳에서 염증 반응이 나타나면 열이 나거나 붓는다. 감정 또한 손상 부위에서 혈관이 확장되듯 분노를 느낀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어 스트레스 상황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통증 반응은 치유하는 과정이다.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느껴줘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감정을 어떻게 느껴줘야 할까?


나는 분노의 타이핑을 할 때도 있고, 노트에 꾹꾹 눌러 적을 때도 있다.

글쓰기는 상처가 난 곳을 치유하는 백혈구 같다. 상처가 나면 백혈구는 염증 반응을 일으켜 세균을 죽이고 상처를 깨끗하게 한다. 그런 다음 새로운 혈관 형성을 유도하고 콜라겐 합성을 도와 치유 기반을 마련한다.

글쓰기 하며 감정이 치유되는 과정과 완전 닮았다. 골이 깊어 때를 놓친 앙금들은 이런 과정을 겪은 뒤 ‘낄끼빠빠’를 가려내 의문이 남는 부분과 서운하다고 말하고 싶은 부분만 정리해서 상대에게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통증이 있는 채로 덤벼들면 상처가 더 벌어진다.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상대에게 불만을 드러내며 ‘내 말을 들어달라’고 하면, 상대는 방어부터 하려고 할 것이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감정의 화기가 느껴진다. 상대의 손실에 대한 두려움 또한 감정의 화기다.

새치 혀끝의 말은 화력을 조절하기 어렵다. 후루룩 타버려 뭘 태우는지, 뭐가 타는지도 모르고 혀를 놀린다. 주장의 일관성을 잃을 수도 있다. 왜곡된 해석으로 감염된 말은 대화의 형식을 전제로 하지만 나오는 말을 자르고, 가로채 내용이 아닌, 말의 경쟁으로 소모전이 되고 만다.


말이 앞서는 것보다 홀로 글을 쓰며 대화의 선수행이 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해도, 감정을 건드리는 순간 저쪽 귀로 나가버리는 말과 달리 글쓰기를 하면 내 마음에 먼저 담긴다. 내가 읽고, 듣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내 안의 목소리끼리 갈등을 한번 겪는다. 의문이 드는 부분을 보며 ‘이렇다구?’ 질문하면서 내가 먼저 듣고, 수긍하는 답을 내놓기도 한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전에 우선 내가 쓴 글을 읽어 보면 경험이 먼저 이루어진다. 인간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느닷없는 상황에는 방어하지만 한 번이라고 겪어본 상황은 무방비하지 않다.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면 감정의 화기 대신 여유의 온기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높은 온도를 원하는 게 아니다. 적당한 온도를 원한다. 효율적인 ‘그’ 지점이 중요하다.

감각기관은 세상을 해석하며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생존하게 하려는데 우리는 감각에 붙들리곤 한다. 그게 바로 집착이다. 내가 원하는 게 감각 자체인지 감각을 통해 행복하고 싶은건지 방향을 찾고 나면 글쓰기는 마음을 충분히 느껴주는 든든한 친구 같고, 쓰는 동안 해석의 방향이 바뀌며 통증 또한 사라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