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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way Jan 14. 2022

미안하지만 수습 종료를 생각하고 있어요

입사 두 달만에 수습종료 통보받은 이야기 part3.

몇가지 일들이 있긴 했다. 뭔가 내가 대단한 실수를 한것 같은 실망감을 내비쳤던 계기가.


FYI, 나는 콘텐츠마케터로 입사를 했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이전에도 콘텐츠를 기획해서 만들고, 발행하는 업무를 했었고 이번에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전임자가 단 한명도 없었기에 콘텐츠 단에서는 제로부터 시작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마케팅팀의 중간관리자는 없었고, 바로 대표에게 공유든 보고든 해야하는 체계(?) 였다.



1. 인스타그램 운영 방안 사건

입사 직후 온보딩시간을 거치며 회사의 존재 이유와 고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회사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들은 채 소화도 되기 전에 나는 이 브랜드의 철학과 가치관을 고객에게 전해야 한다는 미션을 (은연중에) 받았다.


우선 홍보or소통 채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회사 내의 상황으로는 네이버블로그,홈페이지블로그,인스타그램,유튜브,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콘텐츠들이 각개전투를 하고 있었다. 정리와 집중이 필요해보였다. 

팀에 마케터가 나+인턴밖에 없으니 우선 하나라도 제대로 키우는 것으로 시작하는게 급선무이지 않을까. 그럼 우선은 인스타그램으로 시작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빠르게 콘텐츠를 만들어 시도해볼 수 있고, 인스타그램은 담당자를 포함한 브랜드의 주요타겟(203040세대) 들이 사용하는 SNS이기도 하고, 시각적으로 서비스를 보여주기엔 가장 좋으니까.


근데 이걸 대표에게 설득해야했다. 왜 인스타그램인지. (응?...ㅇ?.....) 왜 해야되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지 같은. 그런 근본적인 생각들. 그래 근본적인 질문 중요하지. 근데 당시 우리 생각은 그랬다. 아직 팀이 완전히 꾸려지지도 않았고, 새로운 크루들이 한달 뒤에 온다는 걸 서로 알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중대한걸 결정해도 될까? 어쩌피 완전한 팀이 되었을때 다시 논의를 거칠텐데 지금은 테스트를 하는 시기로 우선 콘텐츠를 계속 만들고 유저들의 반응을 보는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어떡해. 까라면 까야지. 그래서 그걸 다시 정립하고 설득하는데 1-2주가 걸렸다. 그리고 어떤 콘텐츠들을 얼마나, 어떤 내용을 만들 것인지 콘텐츠 발행 계획을 얘기하니 콘텐츠를 몇개 발행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며 좀더 촘촘한 논리로 전달을 해야한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중간중간 또 쳐내야 할 일들도 있으니 쳐내고. 그렇게 인스타그램 운영방안에 대한 계획들은 한주 두주 밀려났다. 더 촘촘하게 더 완벽하게 구성하는게 하루라도 빨리 콘텐츠를 내고 결과를 내는 것보다 중요해보였다. 


하지만 나로선 이렇다할 결과물이 없는게 좀 불안했다. 그래서 뭐라도 만들어야지 싶어 이전에 논의했던 주제로 내용을 구성해 업로드를 했다. 그럼에도 이런 콘텐츠는 뭐 매력이 없다느니, 이런거는 발행하는 의미가 없다느니 대표한테 뭐 그런 소리를 듣긴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표가 수습종료를 통보하며 내게 한 말은 "한달 반 동안 이렇다할 결과가 없었잖아요"였다. 




2. 외근 사건


회사 서비스의 특성상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공장에서의 취재나 인터뷰를 하러 종종 외근을 나간다고 했다. 나 역시 촬영을 위해 외근을 다녀왔는데 문제는 그 뒤였다. 외근을 다녀오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지 (아무도 뭘 알려준게 없으니까)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겨놔야 했었던 것 같다. 뭐 매뉴얼이 있지도 않았고 알려주지도 않았고, 그거 말고도 할 일은 많고.  


그리고 명절 연휴가 시작됐다. 유난히도 길었던 추석 명절은 나에게 일 안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연휴가 끝나고 대표에게 또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00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외근을 나갔다 왔으면 뭘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그런걸 공유를 해줘야지."


이 말을 그 후로도 몇 번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알았다. 내가 미운털이 박혔음을. (근데 그렇게 알아서 척척 잘하는 사람을 원했으면 애초에 그런 사람을 뽑던가, 스타트업 근무경험 없고, 공백기도 있음을 서류와 면접으로 알려줬었고, 대표 본인도 면접볼때 나한테 커리어적으로 매리트가 없다는 뉘앙스로 팩폭을 때렸으면서) 그래도 뭐 어찌됐든 제대로 공유하지 않은건 내 잘못이 맞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회사에서 '공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이 두개의 사건은 입사 후 한달 하고도 10일정도 사이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나마 함께 일하며 의지하던 인턴은 조기퇴사를 했다. 새로운 시니어 마케터분들이 들어오기 전 혼자 일하는 일주일이 어찌나 외롭던지. 


이후 새로운 마케터분들이 들어오신 뒤로 나는 좀 안심이 됐다. 그리고 설레었다. 이분들과 함께 일하면 내가 얼마나 배울 수 있을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를 기대했다. 그러던 중 대표는 갑자기 수습 중간미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며, 순간 나는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도 지나간 일들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수습기간동안 내가 했던 일들과 나의 생각, 앞으로의 계획들을 차분하게 정리해두었다. 간단한 PT로 전달할 것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던 날 줌으로 미팅을 했는데, 대표는 처음부터 나에게 이런말을 했다.


"뭘 준비했다고 들었는데, 어휴 자꾸 미안해지네"


그 말 한마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뭐 예상하다시피 수습종료를 생각한다는 통보를 하고는 나에게 잘 생각해보라 했다. 남은 수습기간을 채워서 뭔가를 보여줄지, 아니면 그냥 이번주까지만 근무하고 퇴사하는 것으로 할지. 내일 다시 얘기하자며 미팅을 마쳤다. 나는 아무 생각이 안났다. 머리속이 그냥 텅 비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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