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LIFE : 신입 변호사를 위한 업무 단축키
취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책, 기사, 온라인 데이터를 탐색하는 데스크 리서치, 전문가와의 대화로 정보를 얻는 인터뷰, 현장에서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는 현장 취재까지. 지난 편에서 소개한 <변호사의 개업>은 데스크 리서치를 바탕으로 인터뷰 자체를 기사화하는 형태였다면, <신입 변호사를 위한 업무 단축키>(이하 ‘업무 단축키’)는 정확하고 실용적인 실무 노하우를 전달하기 위해, 자문이 중심이 되고 데스크 리서치가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에 AI를 활용하고, 최종적으로 교육 담당 변호사의 검증 과정을 거쳤다.
이 특집은 이렇게 가내수공업처럼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완성되었다. 전문가의 사전 자문과 AI와 구글링을 통한 자료 검색, 그리고 다시 전문가의 검증이라는 3단계를 거친 취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그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 지금부터 소개한다.
변호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아이템을 확보한다는 마음으로, 로웨이브가 다음에 어떤 주제를 다루면 좋겠는지, 요즘 변호사님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늘 질문한다.
“일하면서 도제식으로 배우는 실무 노하우, 상황별 대응법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있으면 좋겠어요.” - 5년 차 어쏘 변호사
“신입 때는 별 거 아닌 일도 인터넷 검색해서 맞는지 틀린지 검색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믿고 볼 수 있는 노하우나 가이드라인이 한 곳에 모여있으면 좋겠어요.” - 1년 차 신입 변호사
이번에는 도제식으로 배우는 실무 노하우, 그중에서도 신입 변호사를 위한 실무 가이드를 준비해 보기로 했다. 이 특집의 기획 배경은 실제 발행된 기사의 에디터 노트를 그대로 캡처해 가져왔다. 어떤 니즈에서 기획이 시작되었는지, 여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작성한 글이다.
모든 취재가 그렇듯 <업무 단축키> 특집도 자료 수집에서 시작했다. 변호사들이 말하는 '실무 노하우'란 무엇인지, '신입 변호사가 처음 접하는 업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첫 번째. 늘 하던 대로 단행본을 검색해 보았는데 역시나 책으로 잘 정리된 내용은 없었다. ‘하긴, 책이 있으면 이런 정보가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겠지.’ 다음으로 변호사들의 블로그와 브런치 글을 탐색. 여기도 신입변호사에게 알려주는 목적의 글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나 홀로 소송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정보들이 제법 검색되었다. 시기에 따라 업데이트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은 자료도 있었고, 개인의 경험과 주관적 견해에 기반한 정보가 많아 일반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신입 변호사들이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는 주제들과 자주 언급되는 실무적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알맞은 자료는 참고자료에 쌓는다.
가장 유용한 자료는 타 법률 미디어에서 발행한 "청년변호사 Q&A 시리즈"였다. 10년이 지난 자료였지만, 60개가 넘는 Q&A를 통해 신입 변호사들이 직면하는 실무적 과제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분류 기준이나 순서의 맥락 없이 자료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서 의미 있는 기준으로 묶어 보았다.
Step 1. 변호사 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행정 절차
Step 2. 취업 준비(자소서, 면접, 사내변호사 등)
Step 3. 어렵지 않지만 모르면 당황하는 상황별 대응법
Step 4-1. 사건별 실무 노하우
Step 4-2. 변호사의 태도와 자세, 마인드셋
Step 5. 다음 커리어 방향성
신입 변호사들이 필요로 하는 방대하고 복잡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 범주화하는 것인데, 전체적인 정보의 지형을 파악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집중할 영역을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준다. Step 1은 대한변협 등에서 자세히 안내하는 곳이 있으므로 패스. Step 2와 5는 커리어와 관련된 내용으로 우리가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이므로 패스. 기획한 목적에 충실하게 Step 3과 Step 4-1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어렵지 않지만 모르면 당황하는 상황별 대응법'과 '사건별 실무 노하우'는 신입 변호사들에게 당장 필요한 정보이지만, 최신의 공식적인 문서로 정리된 자료가 없는 영역이었다. 정보의 공백이 크면서도 실용적 가치가 높은, ‘정보의 빈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범주화의 또 다른 장점은 취재의 경계를 명확히 설정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준다는 것이다. Step 4-2의 '변호사의 태도와 자세, 마인드셋'은 제외하기로 했는데, 이미 SNS에서 많은 변호사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아티클이 충분히 있었고,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성적인 요소라 기사의 핵심 목적인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정보 제공’에서 벗어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범주화는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제외할지, 한정된 지면과 시간 내에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전략적 결정의 기반이 된다.
단어, 이미지, 아이디어, 질문 등을 소그룹으로 묶어서 집단화하다 보면 이를 지탱하는 ‘상위개념/구조/추상적 의미’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하면 콘텐츠 전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기 편하고, 제목 뽑기도 수월해진다. - 최혜진, 에디토리얼 씽킹
그렇다. 제목 뽑기도 수월하다. 범주화를 한 후 회의를 하는 데 편집장님이 이 자료를 보자마자 말했다.
“이번 특집 제목은 <업무 단축키>로 하면 되겠다!”
자료 수집과 범주화를 통해 방향성이 정해졌다면, 이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가 필요할지 구체화시켜 보는 단계. 과연 변호사가 되어 처음 접하는 업무란 무엇일까?
먼저, "이런 주제의 기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던 변호사의 의견을 바탕으로 4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Case 1: 변호사로 처음 접하는 업무 절차 안내
Case 2: 작성 공식이나 요령이 있는 서류 작성법 안내
Case 3: 처음 사건 수행 시 체크리스트 & 유의사항
Case 4: 법무사 업무 영역 (변호사와 법무사의 업무 경계 이해하기)
지급명령신청서와 가압류보정서 작성법, 알뜰폰·지역농협·수협에 대한 사실조회 방법, 교도소 접견 절차, 법원 출입 방법 등 각 항목들도 구체적인 상황이나 사례를 중심으로 리스트업 했다.
실제로 이러한 카테고리가 신입 변호사들에게 유의미한지, 그리고 각 카테고리 안에 어떤 구체적인 주제들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들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변호사님의 자문을 구하기로.
신입의 시기를 갓 넘긴 2년 차 변호사와 7년 차 변호사, 두 분을 모시고 초기 리스트를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제시한 4가지 카테고리 중 신입 변호사에게 가장 필요하고 유용한 항목, 반대로 도움 되지 않을 항목은 무엇일까요?
각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구체적인 주제나 사례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2년 차 변호사님은 신입 시절의 어려움과 혼란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어떤 정보가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정보가 부족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조언해 주었고, 7년 차 변호사님은 더 긴 관점에서 신입 변호사가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과 장기적으로 유용한 노하우를 알려주셨다. 또한 주변의 신입 변호사님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전해주셨다. 편집부도 지인 찬스를 통해 알음알음 의견을 구해 항목을 채워갔다.
자문을 통해 초기 구상했던 카테고리의 유용성을 검증받고, 동시에 각 카테고리에 포함될 수 있는 풍부한 실무 사례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또한 업무와 서류작성법이 세트를 이루는 case 1~2는 병합하고, 다른 항목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고 사례의 범위가 너무나도 넓은 case 4는 제외하면서 최종적으로 두 가지 핵심 영역으로 내용을 정리했다.
변호사가 처음 접하는 업무 절차 안내와 서류 작성법 안내: 구체적인 절차와 방법론 중심의 실용적 지식
업무별 체크리스트: 사건 유형별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포인트와 유의사항
초기 편집부의 모호했던 가설이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실제 변호사들의 필요와 관점을 기사에 반영함으로써 명확한 형태를 갖출 수 있었다. 이는 콘텐츠의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했고, 덕분에 편집부가 우리의 콘텐츠에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수집한 사례들의 기초 자료를 작성하는 일이 진행되었다. 먼저 챗GPT와 클로드 두 종류의 생성형 AI를 활용해 기초 데이터를 모으고, 구글과 법원 홈페이지 등에서 자료를 검증했다. 두 명의 에디터가 자료를 조사하고 검증하면서 약 40개 항목을 정리했다. 방대한 자료의 바다에서 개요정리를 잘하는 생성형 AI의 특징을 활용해 각 항목을 우선 질문하고 범위가 너무 넓어 보이는 건 단계별 질문으로 소위 말하는 돌려깎기를 진행했다. 이런 식으로.
한국의 상속 관련 사건의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어?
가장 많은 유형 혹은 대표적인 사례를 알려줘. 이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가 단계별로 해야하는 업무를 상세하게 알려줘.
법적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봐.
로스쿨생은 상속 사건에 대해 주로 어떻게 배워?
로스쿨생이 배운 내용과 실무에서의 차이는 뭐가 있을까?
그럼 로스쿨을 졸업하고 이 업무를 처음하는 신입 변호사가 유의할 점을 알려줘.
상속 관련 사건의 체크리스트를 업무 단계별로 정리해줘.
다음은 변호사가 블로그에 정리한 상속사건 Q&A야. 너가 알려준 거랑 OO 부분이 다른데 뭐가 맞는 거야? 근거를 들어서 설명해 줘. 등등
변호사가 처음 접하는 업무 절차 안내와 서류 작성법 안내
교도소·구치소 접견 신청
피의자 구속영장 청구 시 대응법
통신사 사실조회 신청
금융기관 예금채권 압류
지급명령신청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신청
문서송부촉탁신청서
국가기록원 기록물 열람 신청
국민권익위원회 비실명 대리신고
표준수임계약서 작성
의뢰인과 상담 시 유의사항
법정에서의 유의사항
체크리스트
대여금 청구 사건
임대차 관련 분쟁
교통사고 손해배상 청구 사건
법인격부인의 법리
형사 사건
성폭력 사건
이혼 및 양육권 관련 사건
상속 관련 사건
소년보호사건
영업정지처분취소 행정심판 및 소송
과징금부과처분취소 행정심판 및 소송
건축허가신청불허처분취소 행정심판 및 소송
조세 사건
기업 자문 : 계약서 검토
기업 자문 : 주주총회 & 이사회 관련 소송
기업 자문 : 이사 해임의 소
기업 자문 : 회사법 이슈
기업 자문 : M&A
배당이의 사건
노동 사건
상표권 침해 사건
저작권 침해 사건
부정경쟁행위 위반 사건
변호사로 처음 접하는 일과 각종 서류 작성법은 나 홀로 소송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많이 오픈된 자료가 많았고 에디터가 공부하면서 메울 수 있었지만,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전문영역에 들어갈수록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상태가 되었다. 최대한 비법조인이 정리할 수 있는 선에서 정리를 하고 다시 전문가의 손으로 검증을 받기로 했다. 커리어 인터뷰이로 뵌 적이 있었고, 신입 변호사 교육을 담당하시는 강윤희 변호사님을 필진으로 모시고 편집부의 초안을 공유드리고 변호사님께 자료 검증을 받았다.
업무 영역별 체크리스트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해 주셨고, 기업자문 분야는 실질적인 분야를 새로 제안해 주셔서 다시 취재하고 검증받는 과정을 한번 더 진행했다. 존경의 마음이 절로 들 정도로 집요하게 검증과 보완을 반복했다.
특집 기사는 평균 10개의 항목씩, 세 파트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발행했다.
변호사가 처음 접하는 기본 업무 절차와 서류 작성법은 주로 사용되는 경우, 신청 전 확인사항, 신청 기한, 소요 기간, 신청 방법, 유의사항 등을 나열하고 해당 링크를 추가했다.
체크리스트의 경우에는 사건 종류별로 자주 다뤄지는 분쟁을 예로 들고 중요 포인트와 유의사항을 본문에서 언급하고 체크리스트는 항목 하나하나를 구글 문서로 만들어 링크를 추가했다.
창간 1주년을 맞은 올해 초, 2024년 발행된 모든 기사의 지표와 성과를 분석했는데 의외의 결과에 모두가 놀랐다. 인기기사라 느꼈던 <전국법원지도>와 <글쓰기> 특집이 역시나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놀라운 건 바로 그다음 순위에 <업무단축키>가 바짝 따라붙어 있다는 점이었다. 11~12월에 발행된 특집임을 감안하여 기간 대비 조회수로 비교해 보면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한 거다. 특히나 구글애널리틱스에서 이 특집에 해당하는 기사의 Referral이 유독 높다는 점을 통해 링크 자체가 많이 공유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정량적인 수치뿐만 아니라 정성적인, 그리고 자발적인 피드백도 있었다.
강윤희 변호사님의 <신입 변호사를 위한 업무 단축키> 시리즈 정말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책으로 내주시면 구매할 생각도 있습니다. 이런 좋은 자료는 책장 한 켠에 꽂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펼쳐보면서 일하고 싶습니다. 좋은 자료 만들어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이 글에서도 또 반복하지만, 시간이 금인 변호사의 자발적인 피드백이 가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취재 과정에서 엄청난 노동력이 들어간 이번 특집에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유용하다는 피드백을 듣고서는 또 한 번 확신했다.
“역시 독자는 좋은 콘텐츠를 귀신같이 알아본다.”
“창의성은 노가다에서 나온다.”
글쓰기는 많이 써보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는 말은 내게 한줄기 희망처럼 느껴졌다. 노력이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하는 내게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어서. 좋은 기사를 만드는 일에 취재가 이렇게 큰 역할을 한다니,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한 듯하다. 누군가는 지루하고 수고스럽다 할지 모를 이 과정이 결국 경쟁력이 되고,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된다는 걸 믿으면서 오늘도 성실하게 취재하는 중이다.
중요한 건 기술과 늘 노력하는 태도예요. 제가 만난 예술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기술을 연마할수록 더 자유로워진다.’ 더 많은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론 버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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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건부터 프로페셔널하게, 민사·형사·가사 체크리스트
실수는 거르고 실력을 벼리는 사수의 빨간펜, 행정·기업자문·지적재산권 체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