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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이영원하기를 Sep 07. 2022

부치지 못하는 편지 4

22년 9월 7일

안녕 연우!

제법 오랜만이지.

엄마 편지가 없는 동안 서운하진 않았니?

엄마는 바쁘기보단, 

사실은 마음이 좀 힘들어서 편지를 쓰지 못했어. 

이해해줄 수 있지?

엄마는 요즘 약을 안먹고 있어.

그래서 엄마 스스로 엄마 마음을 이겨내야 해. 

약에 의존할 수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온전히 엄마 힘으로,

자꾸 찾아오는 불안함이나 두려움, 우울함을 

떨치려고 노력중이야. 

네가 있을 때는 네 손을 잡으면 

엄마 마음 속을 가득 채우던 그림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는데

네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래도 '내 마음의 주인이 내가 되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이겨내려고 노력중이란다. 

너도 알지? 엄마가 자주 불안함에 휩싸이는 거. 

이유도 없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도 못한채

두려워하고 우울해한다는 거. 

사실 네가 떠나고 더 심해지는 날도 있어. 

어떤 날은 온몸을 꼼짝할 수 없이 힘이 들곤 해. 

네가 더이상 내 곁에 없다는 거. 

앞으로 두 번 다시 너를 볼 수 없다는 거. 

어떻게 해도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이런 것들이 밀려오면 엄마는 해변의 모래알들처럼 

아무 힘없이, 어떤 의욕도 없이,

그냥 그 물쌀에 쓸려가고 밀려오고를 반복해. 

영영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말야. 

그래서 자꾸만 약이 늘었는데

요즘은 억지로 약을 안먹고 있어. 

엄마가 해낼 수 있을까?

내 맘의 주인이 되는 것 말야. 

너 없이도 평온함을 찾는 것. 

아주 어렵겠지. 그치만 한번 해내볼게. 

질 때가 더 많긴하지만 그래도 매일 싸워볼게.

엄마의 마음과. 

우리 연우가 엄마 좀 응원해줄래?


지난 주말에는 네 물건들이 쌓여있는 작은 방을 정리했어.

그동안 애써 모른척 해왔는데

그냥 네 물건들을 치우고 싶지도 않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엄두도 나지 않아서

아빠도, 엄마도 여름 내내 손도 못대고 있었단다. 

네가 입던 옷, 너무 예뻐 샀는데 정작 신어보지도 못한 양말, 

병원 선생님들이 너에게 써준 편지. 

상자 안에 하나 하나 담아두는데 

내 마음이 저 아래부터 차곡 차곡 쌓이는 기분이랄까.

아주 아래, 아주 어두컴컴한 지하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어. 

우리 연우 아기 때 머리맡에 틀어주던 모빌을 눌러보고,

오랜만에 모빌에서 흘러나오는 익숙한 음악들을 들을 때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버렸지 뭐야. 

네가 들을지도 몰라, 네가 볼지도 몰라. 

하며 매일 네 머리맡의 모빌을 돌리고 또 돌리고. 

건전지가 다 되어갈 때쯤 이상하게 늘어지던 그 음악마저도

우리의 배경음악인 것 같아 그리워지더라.

더러워지고 잘 작동하지도 않는 그 모빌은 

방 한쪽에 다시 잘 세워두었어. 아직 보내줄 준비가 안되었거든. 

네가 목욕할 때 쓰던 이동침대 기억나지?

그 위에 깔려 있던 토퍼는 버리기로 어렵게 결정했어. 

너를 매일 그 위에 올려두고 씻기러 가고, 

또 다 씻긴 후에 그 위에 눕혀놓고 물기를 닦아주고, 

머리를 말려주고, 몸 구석구석 살피며 로션을 발라주고. 

할 때마다 너무 힘들었지만,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단다. 

'이제 점점 힘에 부친다.'

하고 느끼면서도 나는 네 몸 구석구석을 만지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어. 소중하고 귀한 내 아기. 우리 연우. 

네가 누워있던 그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어떻게든 너의 느낌을 찾고 싶어서 만져봤지만

더이상 느낄 수가 없더라. 

그동안 애썼고, 고마웠다. 

라고 네가 눕던 자리에 인사해줬어. 

버리려고 봉투에 담아뒀지만 차마 비오는 날 내놓고 싶진 않아서, 

그래도 네가 누워있던 자리인데 

비를 맞고 밖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생각을 하니 

눈물이 너무 나서, 

비가 그치면 내놓자고 아빠에게 부탁했어. 

다시 날이 맑아졌으니 이제 내놓아야겠구나. 

생각은 하면서도 매일 집을 나서는 아빠에게 

부탁하지 않는 것 보니 사실 이것도 아직은 보내줄 준비가 안되었나봐.

네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이 참 쉽지 않아 놀랐어.

모든 걸 다 가지고 있기도, 남을 주기도, 

그렇다고 네가 쓰던 건데 쓰레기봉투에 넣기도. 

어떤 것도 쉽지 않더구나. 

이럴 땐 네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라도 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나 하나 정리해갈 때마다 

우리가 같이 한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아파. 

그래도 우리 맘 속에, 엄마 기억 속에, 그리고 아빠 기억 속에

우리 연우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주 예쁘게 남아있으니

괜찮을거야. 그치?

잊지않고 엄마아빠가 늘 기억할게. 

우리 예쁜 연우모습. 우리가 같이 했던 행복했던 순간들. 

우리 연우는 엄마아빠한테 언제나 언제나 영원할거야. 

곧 보러갈게. 사랑해 연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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