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9월 14일
연우 안녕?
벌써 우리 연우 얼굴 보고 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네.
어땠어?
엄마는 너를 만나러 갈 때면 분명 처음에는 씩씩한데
나올 때는 자꾸 울어버려.
안 그래야지, 웃는 모습 보여줘야지,
즐거운 얘기만 해줘야지,
맘먹고 가는데도 그냥 우리 사이에 있는 유리창 하나가
그렇게 멀게 느껴지고
지금이라도 당장 너를 여기서 꺼내서 막 데려가고 싶어져.
그래도 아빠랑 인사하고 나올 때마다 생각해.
좋은 곳에 네 새 집을 마련해서 참 다행이다.
네 자리에서 보이는 경치도 좋고,
해도 잘 들고 이런 것들이 엄마 맘을 조금은 덜 무겁게 해.
너도 그곳이 마음에 드니?
너를 낳고 나서 새롭게 알게 된 감정들이 참 많아.
엄마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그 일을 하려고 20대의 거의 전부를 쏟았어.
그래서 욕심이 무엇인지, 성취감이 어떤 것인지,
내가 이 일을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과
남들한테 인정받았을 때의 효능감으로 가득 채워진
20대를 보냈지.
그런데 말이야. 너를 낳고 나선 내가 여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더라.
지독한 죄책감과
남들 다 그냥 밟고 가는 단계를 나만 실패했다는 좌절감.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간병하는 하루 속에
아무도 내 맘은 모른다는,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외로움.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너무 사랑스러워서 1분 1초가 흘러가는 것 마저 아까운,
애틋함.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네가 없는 하루가 너무 길어서 느끼는 심심함까지.
엄마에겐 사실 다 너무 생소한 감정들이야.
너를 만나고 너를 돌보고, 네가 떠나면서
내가 느끼고 접하는 감정의 폭들은 정말 넓어졌단다.
고작 네 살까지 밖에 머물지 못한 아주 작은 너인데,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 참 많아. 신기하지?
부모는 아이의 우주라는데, 어쩌면 내게는 우리 연우가
우주였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엄마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매고 있는 것 같아.
나의 우주를 잃었으니까.
어디쯤 있니?
의식 없이 누워있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곤 했었지.
네가 살아있는 걸까? 아님 이미 너는 이곳에 없는 걸까.
그래서 초점 없이 떠져있는 네 눈을 바라보면서
작은 목소리로 묻곤 했어.
지금 어디쯤 있니?
그런데 정말 너를 잃고 보니 알겠더라구.
너는 내 옆에 있었어. 그렇지?
엄마는 왜 그 많은 시간 동안 너를 의심했을까.
나의 사랑을 의심했을까.
네가 정말로 내 옆에 없으니까 또 많은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있어.
엄마의 인생에 있어 우리 연우가 정말 큰 우주가 맞나봐.
사랑해, 나의 우주, 나의 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