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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을산다 Aug 15. 2022

성장기 아들과 스트라빈스키 듣기

잠과의 사투  

일요일 아침.

KBS클래식 라디오 11시의 진행자 피아니스트 김주영님이 전하는 콘서트 소식에 귀가 쫑긋한다. '고잉홈프로젝트' 이야기 중이다. 마침 이날 저녁 연주 협연자가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트럼페터 알렉상드르 바티다.


"엄마 바티가 나온대. 가고 싶어."라고 말하는 아들.  트럼펫 단독공연이나 협연은 흔치 않은데, 그나마 국내 무대에 자주 오르는 사람이 라디오프랑스필하모닉 소속 트럼페터인 바티다. 작년 여름에도 이 사람 연주 일정에 맞춰 평창대관령음악제에 갔더랬다.


그러나, 

"계획했던 것도 아닌데 갑자기 간다고? 난 싫어."라며 비토를 놓는 남편.

아내보다 엄마의 이름일 때 나약한 심성이 빛나는 나란 사람은, 

재빠르게 콘서트표를 검색해서 몇 장 남지 않은 표를 예매했다.

 

장대비를 뚫고 붐비는 롯데월드몰에 도착해,

기분 좋게 음악 감상하라고 아이스크림도 사먹이며 달달한 기름칠을 해줬건만....


아들이 존다. 꾸벅꾸벅 존다.

'구스타프 홀스트'의 세인트폴 모음곡 C장조 (작품번호 29의 2) 한 곡 이후 줄곧 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트럼페터 바티의 연주를 앞에 두고 졸다니...


10만 원짜리 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아들내미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보지만... 허사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타이틀인데, 이 곡이 연주될 때는 아예 대놓고 잔다.

자기가 보고 싶다던 바티의 연주 때마저 졸자, 나의 손가락에는 점점 감정이 실렸다. 손가락을 있는 힘껏 벼려 쿡 찔렀다. 옆에 사람들이 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머리통을 세게 때려버렸을텐데, 수양하는 마음으로 이것만은 자제했다.


마침내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길,

이 뻔뻔한 아들내미가 말한다.

"엄마 때문에 감상에 방해를 받았잖아!"

"너가 조니까 깨운거지!"

"졸긴 했지만 엄연히 잔 건 아니야."


헐, 이건 또 신박한 궤변일세! 중2병 전조 증세인지, 때때로 이런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다. 


아들내미를 위해 돈과 시간을 썼지만, 아들내미 음악 교육은 커녕 모자 사이만 나빠진 채 돌아왔다.

계획하지 않은 공연에 가는 건, 이토록 해로운 일이었구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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