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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웅 Jan 04. 2023

서울의 꿈

2장 DJ 이야기

                                       

2년여 만에 다시 나타난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L은 난감했다. 그래서 엉겁결에 나온 말이 “웬일이야?”였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자신을 뿌리치고 비정하게 떠났던 그 애가 2년 만에 찾아왔는데 “웬일이야?”라니.

“그냥.”

그 애의 대답이었다. 얘는 또 뭐라는 거야. 얘도 연구대상인가? 뒤이어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

“밥 먹으러 가자. 배고파.”

L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애를 따라나섰다.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당부를 저버리고 공부를 내팽개쳐 버린 L을 향해 응징도, 질책도, 원망의 말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L도 그랬다. 묻고 싶고 따지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묻지 못했다. L은 이미 그 애를 다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그 애를 보자 걷잡을 수 없는 격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갑자기 떠나버린 뒤 2년 만에 나타난 그 애를 향한 원망 대신 반가움과 기쁨이 밀려왔다. 그 애는 다음날에도, 다음다음 날에도 와서 밥을 먹자고 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2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며칠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2년 전의 다정한 사이가 돼 있었다. 그 애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꺼낸 것은 일주일쯤 지난 때였다. 

“서울 가는 것은 포기한 거야?”

며칠 동안 재회의 감격에 빠져 허우적대던 L은 그 애의 물음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랬었지. 이 아이와 함께 기차 타고 서울에 가기로 약속했었지. 이 애는 그 약속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구나.’


그 애는 L에게 문화방송 FM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라는 심야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처음 듣는 장르의 음악이었지만 L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 음악들에 빠져들었다. DJ 성시완 씨가 대학생 신분이라는 것에 L의 심장이 뜨거워졌다. L은 몇 년 동안 막연하게 꿈꾸어 오던 서울행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쪽으로의 생각에 몰입하자 구체적인 계획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딴에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세운 계획은 이랬다. 첫째는 서울에 가자마자 취직을 해서 학비를 벌며 공부에 열중하고, 둘째는 신문방송학과에 합격하는 것이며, 셋째는 문화방송이 주최하는 DJ 콘테스트에서 입상하는 것. 마지막으로 넷째는 방송국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적절한 시기에 군대도 다녀오고 안정된 직업을 갖게 되면 그 애와 결혼을 하리라는 계획도 세웠다. 


그 애도 함께 가겠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집에서 허락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 애는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촌 언니와 함께 살면서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것이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며칠 후, 그 애가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냈다는 사실을 L에게 말할 때 두 사람은 기쁨과 감격에 젖었다. 


야반도주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상경 작전은 은밀했다. 둘이 함께 가는 것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를 함께 타면 발각될 수 있는 까닭에 그 애는 첫차를 타고 L이 다음 버스를 타기로 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눈물 배웅을 뒤로한 채 버스에 오르자 L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몇 년 전에 했던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생각에 감격했다. 앞으로 닥칠 어떤 어려움도 그 애와 함께라면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DJ로서 성공하는 순간까지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그 애와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희열에 들떴다. 


장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했는데 도선장에 있는 여객 터미널이 두 사람의 접선 장소였다. 당연히 먼저 가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 애가 보이지 않았다. 대합실은 물론이고 터미널 일대를 샅샅이 찾아봤지만 그 애는 없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그 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어 만나지 못하면 기차역에서 기다리기로 한 약속을 떠올리며 기차역에 갔지만 그곳에도 그 애는 없었다.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연락할 방법은 그 애의 집에 전화 거는 것이 유일했다. 잘못했다가는 모든 게 무너질 수 있는 까닭에 두려움을 안고 전화를 걸었는데 신호음만 갈 뿐 아무도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어긋날까 봐 L은 서울행 매표소 앞 의자에 앉아 대합실 출입문을 하염없이 바라봤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L이 겪은 감정의 추이를 제대로 표현하기란 어렵다. 처음엔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했던 생각이 걱정으로 변했고 조급한 기다림은 허탈감으로 바뀌었다. 그 애를 향한 원망은 이내 그녀를 향한 그리움으로 변하곤 했다. 시시각각 변화무쌍했던 감정이 평온을 찾은 것은 L이 모든 것을 체념하고 나서였다. 

‘그래, 그 애는 처음부터 함께 갈 수 없었던 애야.’

마지막 기차에 몸을 실을 때 L은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얄궂게도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애초에 종로부터 갈 계획은 기차표를 끊으면서 영등포로 바뀌었다. 지친 몸으로 새벽에 들어간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부터 L은 영등포 일대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음악다방 간판이 보이면 지체 없이 들어가 DJ를 구하는지 물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구직 활동은 고단한 심신을 더 지치게 했다. DJ를 구하는 곳이 없는 것도 그랬지만 그들이 보이는 냉대와 동정의 여지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는 태도에 자존심은 구겨졌고 마음은 울적했다. 선배 DJ가 추천해 준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DJ의 거만하기 짝이 없는 응대에 시골뜨기의 자격지심이 발동했고 울적했던 심정은 울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헤집고 다녔지만 L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L은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때쯤에 이르자 그 애를 향한 원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애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졸렬한 마음으로 그녀를 원망하다 어차피 그 애가 아니었어도 겪었어야 할 일이었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천호동에 사는 큰형 집이 내심 그리웠지만 그런 처지로는 갈 수 없었다. 어떡해서든 일자리를 얻고 난 뒤에 찾아가야겠다는 애초의 결의 때문이었다. 동네를 구로동으로 옮겨 사흘인가 나흘인가를 다녔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을 안고 종로로 옮겨갈 때는 이미 가져간 돈의 상당액이 축나 있어 더는 여관에서 잘 수 없는 형편이었다. 잠자리를 관이네(여관)에서 인숙이네(여인숙)로 바꾸고 끼니는 낙원상가에 있는 천 원짜리 국밥으로 해결했다. 점심 무렵에 여인숙에서 나와 국밥을 먹은 뒤 종로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종로에서의 도전은 더 힘겨웠다. 이미 심신이 지쳐 있는 데다 L의 주관적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일지는 몰라도 종로의 DJ는 더 쌀쌀맞고 거만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주머니에 있는 돈이 바닥을 보인다는 것에 L은 자포자기 심경이 됐다. 돌이켜보면 DJ로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는 생각 하나로 덤빈 시골뜨기의 무모하기 짝이 없는 치기에 지나지 않았다. 인생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나이에 터무니없는 격정과 흥분으로 저지른 잘못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L은 그렇게 된 데에는 갑자기 나타난 그 애가 준비가 덜 된 자신의 마음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며 또다시 그녀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치졸하고 비겁한 영혼으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여섯 살 때 처음 만난 이후 운명처럼 자신의 인생에 엮여 있던 그 애를 향한 숱한 설렘과 기쁨이 모두 그 애의 속임수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까지 생각할 만큼 L은 걷잡을 수 없이 그녀를 향해 원망의 불길을 뿜어내고 있었다.

‘거짓말쟁이. 내 인생에 걸림돌인 계집애. 나를 갖고 논 나쁜 인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계집애.’

가난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여인숙에서 L은 온갖 독설을 내뱉으며 그 애를 떠나보내고 있었다. 


다음 날, 주머니에 천 원짜리 한 장이 전 재산임을 깨달은 L은 처참한 실패자의 몰골로 큰형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천호동에서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곤궁한 처지의 형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기에 숙식이 가능한 음악다방을 찾아 헤맸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L이 그토록 염원했던 음악다방이 그곳에 있었다. 그 이름도 촌스러운 <꽃다방>. 식사는 한 끼만 제공했지만 꽤 넓은 음악실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주인의 말에 L은 과장 없이 감격했다. 드디어 서울에서 DJ의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만으로도 스무날 동안의 고생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또 말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남자 주방장이 L과 함께 자고 싶어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L은 불길하고도 섬뜩한 예감에 빠졌다. 그랬다. 그는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잠결에 더듬거리는 손길을 뿌리치는 L에게 그는 솔직히 고백했다. L은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꼬이는 거냐’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DJ로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강하다 해도 연애를 남자와 할 수는 없었다. L은 서울을 향해 항복 선언을 했다. DJ로 성공하리라는 열망을 품고 시도했던 서울의 꿈은 그렇게 한 달 남짓의 참담한 추억만 남긴 채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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