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시계는 흐른다.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래도 태양이 기지개를 켜는 시각은 안다. 어스름한 새벽 6시, 고요한 적막을 깨고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아직 내 방은 어둡다. 아... 어제 1시에 잤는데... 피곤해... 더 자고 싶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잠시 알람 소리를 무시한다.
보자,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던 것 같은데, 출근하자마자 회의자료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다.
오늘 퇴근 후에 PT 받으러 가는 날이지? 어제 챙겨놓은 운동복 잊지 말고 챙겨가야지.
뭐지, 무시한 현실이 뇌 속으로 더 파고드네. 그렇지 이게 나답지.
어제는 독서 모임을 하고 귀가한 시간이 밤 11시, 그럼에도 다음 날 먹을 점심 도시락을 요리해서 출근길에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세팅해두었다.
다이어트를 위해 PT를 시작했다. 2021년 처음 해보는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너무 방치했다. 한때는 바디 프로필까지 찍었는데 말이다. 이제는 그 모습은 없다. ‘확찐자’가 되어버렸다.
숨 쉴 수 없이 바쁘게 몰아가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온종일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것이 나에게 최고의 고문일 정도로 움직이고 땀을 흘려야 제대로 숨을 쉬는 운동광이다. 그런데, 지금 어디 가서 운동 좀 한다고 명함 내밀기 민망할 정도로 몸이 불어버렸다.
이럴 땐 코로나로 인해 구내식당 이용이 금지된 것이 차라리 잘된 것 같다. 다이어트 식단으로 매일 점심 도시락을 챙겨 와도 요란스러워 보이지 않을 테니.
정신을 차려보자, 침대에서 일어나서 되도록 30분 내로 샤워와 헤어스타일을 제외한 용모 정돈을 끝낸다. 고데기에 불을 올려놓은 채로 부엌으로 어기적 어기적 걸어 들어간다.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오트밀 쉐이크를 보틀에 넣어 물과 섞어 흔들고 훈제란 2개를 꺼내 껍질을 벗긴다. 출근 시간이 50분 정도 되기에 차 안에서 마실 캡슐커피도 한잔 진하게 내린다. 간단한 아침을 챙겨 화장대 앞에 앉아 해결하며 헤어스타일을 정돈한다.
오늘 점심 식사와 간단히 해결할 저녁 식사를 가방에 담고, 퇴근 후 바로 PT 수업을 갈 운동복도 가방에 담는다. 앗, 출근길에 마실 커피도 꼭 챙겨야지!
독서모임에서 다음 주에 토론할 새 책도 점심시간에 틈을 내 읽기 위해 가방에 담는다.
요새는 미니백이 유행이라던데, 난 평생 미니백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바리바리 보부상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 같다.
다시 알람이 울린다. 출근 시간을 알리는 6시 50분 알람이다. 현관을 열고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며 오늘은 어떻게 최단 거리로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지 잠시 고민한다.
방금 내려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바쁜 하루 일과로 챙기지 못한 시사 경제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팟캐스트 어플을 켠다. 요새 바쁜 일과 덕에 잘 챙겨보지 못한 경제 정보를 이때라도 챙겨봐야 뒤처지지 않는다. 요새 이슈는 무엇일까? 오늘의 토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첨이다.
아... 갑자기 연초에 결재하고 근 한 달간 듣지 못한 에XX 공인중개사 인터넷 강의가 떠오른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재테크 공부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지금, 너무 졸려 허벅지를 꼬집으며 운전 중이지만 한 시간 더 일찍 일어나 인강을 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한다.
째깍째깍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한마디 씩 한다. 이 말은 두 부류로 나뉜다.
“메리야, 넌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서 쓰니? 넌 미래 수명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것 같아. 널 보면 가끔 숨이 막혀”
“메리야! 난 남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해내는 네가 너무 대단해! 난 널 응원해!”
난 왜 시간의 빈틈을 보면 참을 수 없는 것일까?
왜 많은 것들을 시간의 빈틈에 꾸역꾸역 밀어 넣어야 안심이 되는 걸까?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열다섯 살인가 중간고사 시험기간에 집중이 안 될 때, 공부 자극 글귀를 찾다 발견한 글귀이다. 어떤 사람이 남긴 명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날카로운 말은 어린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전투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지금 이대로 살고 있는 대로 생각하게 될 거라니... 너무 잔인한 말이었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도 끔찍하다. 수입이 적은 달엔 생활비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가계부를 적던 엄마의 뒷모습이 싫었다. 그런 엄마에게 문제집 산다고 책값을 받으며 미안함을 느끼는 내 모습은 더 싫었다.
그 이후로 항상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최소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위해 노력조차 해보지 않았다면 난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자격조차 없지 않을까?
째깍째깍 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내 머릿속에 시곗바늘을 박제시킨 채, 시간의 빈틈을 참을 수 없던 강박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 일상의 빈틈이라도 생기면 이 시간은 어떤 알찬 무언가로 채워 넣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시간을 사용하면 결과는 뭐든 생산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했다. 지식이든, 경험이든, 체력이든, 돈이든.
이 한 마디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이 말 덕에 난 지금 서른하나라는 나이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고, 부모님 도움 없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며 내가 정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탐하고 있다.
가끔은 시간의 빈틈을 참을 수 없어하는 강박 때문에 숨이 가빠 멈추지 않는 내 다리를 원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동감 있는 내 모습이 난 좋다. 어쩌면 나는 꽤 오랫동안 시곗바늘을 내 머릿속에 박제할 거 같다.
지금 나의 시계는 흐른다. 째깍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