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고 싶지만 읽히고 싶지 않은 마음
“메리씨, 정말 오랜만이에요! 요새 글 쓰시던데요? 글 잘 읽고 있어요.”
직장동료 결혼식에서 만난 4년 전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직장동료가 나에게 안부를 건넸다. 그는 함께 일할 때 팀워크는 좋았지만 사석에서 만날 정도로 가깝지는 않은, 개인 톡으로 안부를 주고받진 않지만 단톡방에서 새해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사이였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독자인데, 팬 사인회를 해도 모자랄 판에 가슴 한가운데 '쿵'하며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졌다.
입꼬리를 한껏 위로 치켜올리며 반가운 시늉을 했지만 내 동공은 이미 초점을 잃은 채로 방황했다.
"어... 어?! 제 글을 읽었다고요? 구독도 안 하고, 라이킷도 안 눌러서 읽었는지 몰랐어요."
"아... 민망해할까 봐 안 누르고 조용히 읽기만 했어요."
입으로는 안부를 물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가깝지 않은 지인이 내 글을 읽었다. 다 들켰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아... 인스타 계정 링크로 들어간 건가?
그럼 내 가족 이야기도, 내 강박도, 내 과거 이야기도 다 읽었겠네?
링크 괜히 걸어뒀나...
금방 가슴 한가운데 떨어진 묵직한 무언가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어둡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내 글을 읽어달라며 홍보하듯 SNS 계정에 떡하니 브런치 링크를 걸어뒀었다.
정작 그 링크를 타고 들어온 독자를 눈 앞에 두고 아이러니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치부를 들킨 듯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얼마 전, 이번엔 브런치 북을 도전할 것이라며 주변에 큰소리를 쳐뒀었다. 나의 ON&OFF를 주제로 글을 쓸 것이라며 목차까지 만들어 친구들에게 어떤 것이 가장 흥미롭냐고 투표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 직장동료와의 만남 이후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처음엔 내가 모르고, 나를 모르는 타인이 내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눌러주는 것이 기뻤다. 내가 누구인지 더 알려주고픈 친한 지인들이 내 글을 읽고 날 더욱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이 기뻤다.
마치 '라이킷'의 수는 '너도 그래?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나타내는 지표처럼 느껴져 라이킷 수가 올라갈 때마다 하늘로 날아갈 듯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의 글 쓰던 나는 내 감정에 온전히 몰입해 그 감정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 무엇일까 고심했다
내 글을 읽고 있었다던 직장동료를 만난 후, 나는 나를 표현하는 법보단 그들이 내 글을 어떻게 생각할까에 온통 신경을 쏟았다. 어떻게 해야 이 글에 등장하는 직장동료가, 직장상사가 그가 아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그들에 대한 날것의 감정을 불쾌하지 않게, 부끄럽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하... 난 아직 멀었나 봐. 이렇게 소심한데 작가는 무슨.
그리고 인스타에 걸어뒀던 브런치 링크도 지웠다.
내 앞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무언가는 내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벽을 세웠다. 한동안 벽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주저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글을 연재하지 않는 동안 가끔 일기를 썼다. 붙잡아 두고 싶은 스쳐가는 감정들을 일기장 속에라도 꾹꾹 눌러 담아두고파 시작했다. 브런치를 연재하고 있지 않는 아쉬움에 시작한 일기 쓰기였지만, 그 글쓰기는 나에게 다시 글을 연재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일기장 속 꾹꾹 눌러 담은 감정에 공감해줄 이는 없었다. 문득 '라이킷' 수가 올라갈 때 벅차올랐던 감정이 그리웠다.
다시,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쩔 수 없는 소심한 관종인 나, 이번에 내가 부딪힌 벽은 더욱 대담한 관종 또는 성숙한 작가가 되기 위한 도움닫기가 아닐까?
아직 나는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글은 더 이상 주저앉아 한숨만 내쉬지 않고, 벽을 부수던 넘어서던 시도를 해보겠다는 나의 선전포고이다.
다음엔 내 글을 읽었다는 독자를 만날 땐 그 독자가 누구든 두손을 꼭 잡고 내 글을 읽어줘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