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활을 오래하다보니, 최근 글을 쓰는 게 고통스러워졌다.
특히 <취사병 전설이 되다>라는 작품은 소설과 웹툰을 통해 무려 7년이란 기간을 연재했고, 그 사이 글을 쓰며 많은 일을 겪었기에 최근 부쩍 힘든 것을 느꼈다.
솔직히 말하면 난 어느 플랫폼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다시는 그 플랫폼에서 연재할 수 없다는 조건이다. 내가 잘못한 건 여전히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나기도 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도 했고.
ps : 지금은 해당 플랫폼의 블랙리스트 제도가 사라진 것으로 들었다.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라 확실치는 않지만, 연재도 가능한 것으로 보아 블랙리스트에서는 해제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그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음에도 결과는 좋았다.
아무래도 웹소설에서 웹툰으로 전향한 것이 가장 잘한 선택 같았다.
웹툰으로 전향한 뒤 5년이 지난 요즘에는 주변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많이 온다.
웹소설 작가로서는 스스로 퇴물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지만, 의외로 웹툰 업계에서는 많은 분들이 찾아주신다.
하지만 협업 제안들은 대부분은 거절하고 있다.
최근 너무 일에만 몰두해 지치기도 했고, 잠을 푹 자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30대인 나에게 암이란 병이 찾아왔을 때는 정말 인생이 끝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이 즐겁지가 않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글쓰기인데, 그것이 정말로 실현이 되었을 때의 쾌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특히 올해에는 그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어떠한 자극에도 덤덤해졌고, 어떠한 성과나 칭찬에도 기쁘지가 않았다.
업계용어로 좋아하는 것과 실제 하는 일이 일치하면 덕업일치라고 하는데, 나는 덕업일치를 하고 있음에도 최근에는 즐겁지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감정이 정확히 이번 달로 끝났다.
지쳤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그 이유가 이타주의적인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감정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느끼고, 그것을 통해 희망을 보고, 희열을 느끼는 것을 보며,
나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 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5년 전 웹툰 작가로 데뷔하던 날.
나는 네이버에 연재한다는 사실에 하루 종일 내 작품 페이지에 들어가 댓글을 보았다.
그리고 매일매일 독자들이 단 댓글을 보며 거기에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지 곰곰히 생각했다.
칭찬 댓글에는 미소를 지었고.
내용 지적 댓글에는 스토리적 측면에서 잘못되었는지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 일을 완결까지, 심지어 수술 뒤 회복실에 들어간 뒤에도 핸드폰으로 작품에 달린 댓글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 달에 런칭한 작품이 있었다.
나도 물론 댓글 체크를 하긴 했지만, 같이 작업한 작가님도 똑같이 그 댓글을 보며 같은 팀들에게 물었다.
"와, 평가가 너무 좋은데요?"
"아- 이 댓글은 뼈아프네요. 지적한 게 맞는 것 같은데 수정할까요?"
"이거 잘 되고 있는 거 맞죠? 반응이 심상치 않은데요?"
나와 같은 생각.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을 불러온다.
그 감정을 우리는 이미 "공감"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최근 감정의 변화가 없던 나조차도 팀원들의 성공에 도취되어,
새벽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껑충껑충 뛰며 "예스! 예스!"를 남발했다.
한참 뒤,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가 왜 그랬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기쁨을 공유하는 팀원들이 있어서라고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작업했던 전작이 보기좋게 망해, 이번에 실패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솔직히 6년째 운영중인 사업의 오너로서, 사업은 숫자가 전부다.
매출이 있어야 하고, 이익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속할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망했다면 본래라면 같이 하지 않았어야 되는 팀작업이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바뀌었고, 내 말을 들어주었다.
나는 개그에 치우친 스토리를 모두 폐기했고, 팀원들은 너무 무거워보이는 먹 위주의 작화 스타일을 버리고, 채색 위주로 작화로 변화시켰다.
변화하는 과정에서 거의 6개월 정도의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로 인한 의견 차이로 서로의 감정도 골이 생겼다. 새벽에도 전화를 하고,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작품의 성공을 위해 피드백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결국 결과를 냈다.
전작의 실패를 딛고, 꽤나 주목받는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같이 일한 팀원들의 행복에 어떠한 것에도 행복하지 않았던 나도 드디어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고 생각한다.
팀원들은 모두 2년 이상 얼굴을 보았던 사람들인데, 호흡을 2년 이상 맞췄던 사람들이라 그들의 성공이, 그들의 행복이 더욱 더 값진 기분으로 다가왔다.
이번 작품의 성공으로, 우리 팀원들은 부천의 "웹툰융합센터"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이사하게 되면 더 많은 업계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정진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다.
과연 잘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감정을 통해 나는 다시 희망을 보았다.
앞으로 5년, 10년은 더 지속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이다.
계속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하다보면 성공에 가까워질 것이라는 것은 안다.
나는 오늘도 나의 행복이 아닌 동료, 팀원의 행복을 위해서 글을 쓴다.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하길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