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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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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파규동 Jun 26. 2019

5분 만에 떠나는 시간여행, MBC ‘오분순삭’

과거행, 미래행 모두 다 가능합니다!

요즘 20대들, TV 잘 안 보잖아요? 안 그래요?


 방송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만날 때면, 항상 20대의 방송 소비 패턴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는 합니다. 유튜브니 넷플릭스니 손 안의 볼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저마다의 일로 분주한 20대 청년들을 TV 앞에 한 시간씩 붙잡아두기는 확실히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죠. 방송에 관심 깨나 갖고 있는 저만 하더라도 ‘본방사수’하는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 개 이하이니까요.


 하지만 기억을 조금만 더듬어보면, 우리 20대는 오히려 어렸을 때부터 TV에 중독된 세대였습니다. ‘무한도전’‘1박2일’을 본방사수 안해본 사람이 있을까요?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봐도, ‘X맨’, ‘강호동의 천생연분’, ‘MC대격돌’을 보고 다음 날 학교에서 따라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과장 조금 덧붙여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씩 가족끼리 TV 앞에 둘러앉아 치킨을 뜯으며 예능 프로그램을 보던 때가 그리운데, 제 또래의 여러분들도 그렇겠죠?

그 때 그 시절, 우리를 TV 앞에 끌어들였던 예능 프로그램들 '강호동의 천생연분' (좌), '무릎팍도사' (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억의 예능’들이 그리워져도, 적법한 방법으로는 볼 수 있는 길이 별로 없었습니다. 각 방송사에 아카이브가 있지만, 대중에게 공개된 것은 주로 뉴스 프로그램 위주였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업로드는 드라마 위주_’MBC Classic’ 채널 참조) 그런데 작년을 기점으로 각 방송사마다 유튜브를 통해 ‘과거 예능 다시보기’ 채널 또는 콘텐츠를 편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과거 프로그램에 대한 일정한 수요를 확인한 이상, 제작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상당량의 조회수(또는 구독자수)를 확보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죠. 또한 과거 프로그램이 다시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을 경우, 이를 이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 역시 존재합니다.


l MBC ‘오분순삭’, 유튜브에서 ‘지뚫킥’ 열풍을 불러일으키다

  

  MBC 역시 작년 7월부터 유튜브 ‘MBC Entertainment’ 채널에서 ‘오분순삭’이라는 타이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을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분순삭’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의 액기스만 추려서 5분으로 편집한 클립영상의 포맷인데요. 이는 짧은 길이의 스낵 영상을 선호하는 젊은 층의 니즈를 저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영상에 현대적 감각의 재치있는 자막을 추가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오분순삭은 자막이 반이야’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죠. 그 결과 ‘오분순삭’의 ‘지붕 뚫고 하이킥’ 시리즈는 6개월 만에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정확하게 5분동안 이어지는 콘텐츠와 재치있는 자막

  

  현재 ‘오분순삭’은 소개하는 과거 프로그램의 풀을 넓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MBC 주요 예능 프로그램(특히 ‘나혼자 산다’가 높은 비중을 차지합니다)의 선공개 영상 역시 제작하고 있습니다. 매 콘텐츠가 기본적으로 20만 조회수를 상회하고, 화제가 되는 영상은 몇백만 조회수를 우습게 넘겨버리는 등 확실한 성과도 내고 있죠.

'오분순삭'의 '나혼자산다' 선공개 콘텐츠


l ‘오분순삭’은 왜 독자채널을 가지지 않을까?


  이러한 ‘오분순삭’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저는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생겼습니다. 

왜 ‘오분순삭’이 독자 채널을 개설하지 않는 것일까요?

 

 비슷한 컨셉의 KBS ‘깔깔티비’와 SBS ‘스브스 캐치’, JTBC ‘봐야지’는 독자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MBC는 ‘오분순삭’을 ‘MBC Entertainment’ 채널 내에서 콘텐츠로만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죠.


  여기에는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채널을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MBC Entertainment’ 채널의 인플루언스에 편승할 수 있습니다. ‘MBC Entertainment’는 579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메가 채널입니다. 특히 (외국에서만 재생가능한) 방송의 풀버젼 클립 영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구독자도 상당수 존재합니다. ‘오분순삭’은 영어와 스페인어 자막도 지원하는 등 그 타겟층을 글로벌 하게 잡고 있기 때문에, 기존 채널에 업로드 했을 때 접근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즉, 프로그램과 채널에 대한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분순삭’이 론칭 초반부터 타방송사의 프로그램보다 월등히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에는 이 요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일 영상으로 548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분순삭’이 다루는 프로그램이 다양해짐에 따라, 업로드한 콘텐츠들을 주제별 또는 프로그램별로 분류할 필요성이 생기고 있습니다. 현재 ‘오분순삭’은 다분히 검색 유입에 초점을 맞춰 분류되어 있는데요. 제목부터 일괄적으로 [오분순삭]을 가장 먼저 배치하고, 마지막에 다루는 프로그램명을 기입함으로써, 검색해서 찾아보기 용이한 형태입니다. 이렇게 유입을 유도한 이후, 리텐션은 구독이나 유튜브의 자동추천 기능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젊은 층의 유튜브 소비 유형에는 ‘재생목록 몰아보기형’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의 재생목록에 묶여있는 동일 주제의 짧은 동영상들을 순서대로 (또는 관심있는 것만 골라서) 몰아보는 패턴이라고 할 수 있죠. ‘오분순삭’의 경우에는 하나의 목록 안에 모든 콘텐츠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어 이러한 소비 니즈를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오분순삭’ 콘텐츠들은 ‘MBC Entertainment’ 채널의 ‘오분순삭~ 오분 꿀잼 시간~’이라는 목록 안에 모아져 있는데요. 만약 ‘오분순삭’이 독자적인 채널을 개설하고 ‘지붕 뚫고 하이킥’, ‘나혼자산다’ 등 프로그램 별로 재생목록을 나눈다면, 유튜브 소비 패턴에 더 잘 부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러 콘텐츠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오분순삭' 재생목록

  MBC ‘오분순삭’은 뉴미디어를 활용한 콘텐츠 2차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MBC의 저녁을 빛내왔던 주옥 같은 ‘구관’ 예능 프로그램들이 ‘오분순삭’의 손을 거쳐, 다시금 사람들의 웃음을 책임지는 명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뉴미디어 플랫폼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본 채널에서 화제가 되는 ‘역수출’ 현상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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