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저의 저서 <상류인생 하류인생>(김의경著, 갈매나무刊, 2007)의 내용 중 일부를 연재하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1. 두개의 에스컬레이터 (글: 김의경)
“상류와 하류, 두 개의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한 사람이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는 인생의 출발점에서 올라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는 정해져 있다. 거기서 다른 쪽으로 갈아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사회의 양극화, 계층화다. 일본은 정말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인〈주간 다이아몬드〉가 2006년 초에 특집으로 실었던“상류 사회· 하류 사회”라는 기사의 도입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상류 사회로 이어진다. 여유 있고 풍족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원하는 것은 대부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하류 사회로 이어진다. 가난과 불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도 돌아오는 건 계속해서 늘어나는 빚과 암담한 미래뿐이다.
그렇다. 그 누구도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그리고 일단 한쪽에 올라타면 중간에 다른 쪽으로 갈아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06년, 일본에 갔을 때의 일이다.〈주간 다이아몬드〉의 특집 기사가 나의 눈길을 확 잡아끌었다. 신주쿠에 있는 대형 서점인 키노쿠니야서점의 그 많고 많은 잡지들 중에서 왜 하필 이 잡지가 나의 눈길을 끌었을까? 그건 이 이야기가 단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있듯이,‘양극화’ 문제는 바로 우리의 문제이기도 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게다가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는 일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종의 물리적 현상과 같아 보인다. 촛농이 흘러내리다 다시 굳는 것처럼, 물이 얼어서 서서히 얼음이 되어가는 것처럼, 양극화 현상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서서히 진행되다가 이제는 막 고착되고 있는 시점인 듯하다.
70, 80년대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다.‘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너도 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며“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고 목청을 높이던 시대가 있었다. 그 당시는 정말 개천에서 난‘용’이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고 노력하여 잘 살게 된 사람들이 상류 사회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었다. 도중에 상류 사회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로 갈아타기도 어렵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부터 상황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전부터인지 모른다. 서서히 물 밑에서부터 얼어 들어가는 바람에 다들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김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