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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Dec 17. 2020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바로 그때


살다보니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잘 안풀릴때도 있다. 


풀리지 않는 일을 손에 쥐고 끙끙 거리다가 우울함의 나락에 빠질때도 있으며, 스스로 만든 생각의 고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 거릴때도 있다. 그럴땐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손에서 모든것을 다 놓고 며칠동안 아무생각도 안하게 잠만 자고 싶은 심정이다. 그 바닥에서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며, 그 누구도 내 손을 잡아 끌어올려 주지 않을 것임을 안다. 결국은 땅을 짚고 일어설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만 잔인하리만큼 선명할 뿐이다. 


그럴땐 모든게 뒤죽박죽이다. 


이 모든게 결정적인 순간에 했던 내 실수탓인것만 같아 자책하다가도 운이 없어 그랬을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 사실은 그게 내 탓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끊임없이 이 사람 저사람 탓으로 돌려본다. 무엇으로든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이다. 누구의 탓이든 누구의 잘못이든 결국은 내가 끌어안고 있는 문제이며 결과임에도, 그렇게라도 부인하다보면 언젠가는 정말 이 모든 책임을 질 사람이 스스로 나타나 나에게 사죄할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결과를 앞에두고 드는 오만가지 불길한 추측과 예감들은 또 어떤가. 일어나지도 않은일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한발자국 앞도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다정했던 사람들이 웃음기를 지우고 나에게 등을 돌리게 될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그 곳에서부터 나를 다잡을텐데, 그걸 찾지 못해서 마음이 괴롭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보려고 해도 우연히 일어났던 “일이 잘 안되려고 벌어진” 많은 일들과, 불안함에 넘겨짚을 용기조차 없던 “앞으로 벌어질 안좋을 일”들 때문에 갈길을 잃고 가쁜 숨만 몰아쉬기도 했다. 


이럴때 내가 쓰는 방법이 하나 있다. 


살면서 한 두세번 썼던 방법인것 같다. 그 두세번은 위에 나열했던것 처럼 잔인하고 처절하게 인생이 꽉 막힌것 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을때였다. 그럴때는 문제에 잠식되지 않는게 제일 중요하다. 그래야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에 들어앉아서 제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그 문제가 뭔지 정확히 알수가 없다. 그래서 최대한 문제에서 걸어나와 바라봐야 한다는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면 문제 상황을 어떤 순서로 해결해나갈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이것은 문제의 크기를 가늠하거나 문제의 복잡성을 따져볼 기회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나 일들이 관련되어 있는지,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아니면 이 문제를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을 받을수 있는지 등이다. 


문제를 큰 단위부터 쪼개어 작은 단위로 나누어 가며 목록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다보면 중복되거나 비슷한, 혹은 불안감에 비롯되는 가상의 문제들은 지워나가고, 줄기가 되는 큰 문제들에 집중할수 있다. 대체로 이런 부분들을 메모해두는 것은 도움이 된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공부를 할때 입으로 공부한 내용을 스스로 설명하는 방식이 효과적이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입에서 말을 문장으로 만들어 처음과 끝까지 한번에 말할수 있다는 것은 그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은 내용은 입에서 나오다가 끝맺음을 맺지 못하거나 동사나 목적어가 흐리멍텅한 비문을 만들어버린다. 해서, 준비의 마지막은 늘 내 입을 통해서 나오는 나의 문장을 내 귀로 듣는 일이다. 논문심사나 프리젠테이션, 혹은 논술식 시험공부 뿐 아니라 때로는 수학문제를 풀때도 이 방식은 여전히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이 방법을 문제상황에도 적용한다. 다만 혼자 진술하는 방식보다는, 나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지닌 날카로운 인터뷰어(interviewer)와 그 문제를 상황에 맞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인터뷰이(interviewee) 양측의 입장에 다 서게 되기 때문에, 서로 상반된 견해나 논리적 충돌을 여실히 경험할수 있다. 입으로 내어 말하다보면 브레이크가 걸려서 움직일수 없었던 문제지점이 생각보다 조악한 논리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지각할수 있다. 혹은, 자책이나 남의 탓으로 돌렸던 문제가,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전후 사정이 있었던 인관관계 속에 있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멀리 나가서, 현재 시점이 아니라 3년후 혹은 5년후 시점에서 나에게 하는 인터뷰라고 생각해보면, 현재의 문제에서 확실히 걸어나와 바라볼수 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겠어요? 

그때 왜 그런 결정을 했나요.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뭐였나요.

왜 그렇게 하지 못했나요. 

이유를 순서대로 말해주세요.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적절한 해결방안이 무엇이었던 같습니까.


이렇게 문제의 가닥을 잡고 해결해나갈수 있는 방안을 통함해 예닐곱개의 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을 하다보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문제는 문제로, 감정은 감정으로 분리시켜가고, 가장 큰 문제와 그렇지 않은 지엽적인 사건들을 구분하게 된다. 문제의 당사자가 누구이며 내 입장에서 해결할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되며, 불필요하게 스스로를 크게 자책하기도 남탓을 하지도 않게 된다. 그것이 일터에서 생긴 다른 사람과 관계된 문제이든 개인적인 성취나 도전에서 벌어진 일이든, 이 방법은 대부분 효과가 있었다. 다분히 일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연애와 결혼을 비롯하여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에도 그랬다. 


출근을 하며, 장을 보는 길에, 산책을 하다가 혼자서 비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실타래처럼 얽혀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찬찬히 풀어내다보면 어느순간 입꼬리에 힘이 들어가며 살짝 올라가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 바로 그때가 당장이라도 무너질것 같던 세상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바로 그때이다. 




커버이미지 Photo by Dev Asangb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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