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생각해보면 작년, 올해처럼 이상한 해가 아니었더라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이 시작되고서야 시작할 엄두를 내었으니, 바이러스가 집어던졌던 여러개의 폭탄에 고생이 많았지만 그 중에는 선물도 있었던 셈이다.
전세계의 사람들의 발이 꽁꽁 묶였던 지난해에는 집에만 있느라 사람구경을 하기 힘들었다. 원래도 사회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 둘이서 만나 가족을 이룬데다가,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다보니 지인의 범위는 더더욱 좁아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함께 어울렸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여느 이민사회의 숙명이 그렇하듯 사람들은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했다. 졸업후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나는, 일이 있을때마다 잠깐 만났다 헤어지는 동료들이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매일매일이 ctrl c + ctrl v 처럼 똑같은 하루를 지내다보니, 하루를 보내느라 바쁘고 또 하루를 견디느라 지루했다.
그러던 중, 오랜 친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단톡방에서, 월례정기모임을 생각해냈다. 올해로 만난지 24년이나 된 친구들이다. 세상이 흉흉하다는데 다들 잘 지내겠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고, 얼굴을 본지 적어도 일년이상 되었으니 문자말고 얼굴도 보고 싶었다. 미국에서도 동부와 중부에 한명씩, 한국에서도 서울과 경기도에 한명씩 살다보니, 시차에 구애받지 않고 단톡방에서 비동시적 대화를 하는 것이야 두말할 필요없이 편리하고 간편했지만, 우리 조금만 서로를 위해 커피한잔 같이 하는 시간을 내어보면 어떨까 얘기했다. 우리 대학을 갓 입학했을때에는 매일매일 만나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여름이나 겨울에는 며칠동안 여행을 함께 하기도 했으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았을때에도 한달에 한번은 만나서 생일을 축하하거나 크리스마스를 보내거나 새해를 맞았으니까. 우리 서로 멀리 살지만, 한달에 한번 얼굴 보면서 얘기하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바이러스 덕분에 팬데믹 덕분에, 스무살에 만나 친구가 된 우리는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월례모임을 시작했다. 열 세시간, 열 두시간의 시간차를 고려해서 한국시간으로는 토요일 밤 10시, 미국 중부에서는 토요일 아침 7시에 만났다. 한국에 있는 두명은 고단한 주말 하루를 마치고 캔맥주 하나씩 들고 화면 앞으로 모였고, 미국에 있는 두명은 알람을 맞춰 일어나자마자 잠옷 위에 가디건을 하나 걸치고 커피잔을 들고 모였다. 먼옛날 이야기부터 요즘 있었던 일까지, 첫 모임에서는 두서없이 지난 몇년간 밀렸던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넷이서 모두 함께 만난적은 언제적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 십년은 더 된것 같다. 화면으로 마주보는 얼굴들은 우리 젊었을때 공들여 화장하고 만나는 얼굴은 아니지만, 순간순간 보이는 짖궂은 옆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목청좋은 목소리가, 유난스레 깔깔 거리며 웃는 웃음소리가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를 예전처럼 한 자리에 앉혀 놓은것 같다. 거리낌없이 아이들 얘기를 하고 남편얘기를 하고, 부모님이나 가족얘기를 나누었다. 스무살에 만난 친구들에게 감추고 말하지 않을 일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사십대에 걸맞게 운동이나 건강, 피부관리 얘기로 돌고 돌았다.
남편 외에는 오랫동안 “어른”과 대화하지 못했던 나에겐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듣기만 하다가 어느새 옛날처럼 얘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함께 걱정하고 함께 고민했다. 예전에 그랬던것 처럼 누군가 힘든일이 생기면 같이 얘기하면서 방법을 모색했다. 그간 살아오면서 쌓았던 각자의 경험과 지혜는 서로에게 감사한 도움이 되었다. 예전에는 함께 젊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는데, 지금은 함께 나이들어간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함께 인생을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얘길 나누는 시간동안, 나는 스무살이었고,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 중반이었고, 친구 결혼식에 찾아갔던 이십대 후반이었다.
꿈꾸었던것과 생각했던것과는 다른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변한건 아니었다. 새롭고재미있는 일에 늘 눈빛을 반짝였던 친구는 여전히 열정적이고, 어릴때부터 돈버는데 관심이 많던 친구는 여전히 경제적 마인드가 탁월하다. 혈액형과 별자리 운세를 신봉했던 친구는 이제 거기에 심리학적 이론까지 접목해서 한층 거부할수 없는 논리로 운세를 점치고, 남들일에는 똑부러지게 사리판단 잘하다가도 자기 일에는 덤벙대던 나도 여전히 친구들에게 핀잔을 듣는다. 하나마나한 잔소리들을 이어가고, 몇년 후에 여행을 가자는 원대한 목표도 세우다가, 일단 올해는 한국에서 모두 만나 진짜 얼굴좀 보자는 얘기로 아쉬움을 드러낸다.
한달에 한번,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시차로 혹시 헷갈릴까봐 전화기에 알람도 하나 만들어둔다. 다음 한달동안 또 복붙의 하루하루를 지내게 되겠지만, 동그라미 쳐놓은 날짜를 힐끔거리며 다음 모임을 기다린다. 누군가 단톡방에 "이게 뭐라고 기다려진다 야!" 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내 마음을 들킨것 같아 웃음이 났다. 멀리 살아서 자주 못본다는, 멀리 살아서 예전같지 않다는 불평은 이제 할필요가 없게 되었다. 진작에 이렇게 했을껄 싶엇지만, 이제라도 이런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특히나 다른나라에 이렇게 덩그러니 떨어져 살고 있는 나에게는 잃어버린 친구들을 되찾은듯 뭉클하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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