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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May 02. 2021

스포트라이트가 비출때

꽃이 필 무렵이 되면 조바심이 나서 집안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자꾸 정원을 들락거리느라 바쁘다는, 친애하는 한 작가의 말에 깊이 동감한다. 집안에 서서 창밖으로 확인하다가 결국 현관앞에 있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신고 정원으로 나가, 작년 가을에 묻어둔 구근이 싹을 틔웠는지 꽃망울이 맺혔는지 꽃을 피웠는지 수도없이 눈으로 확인했다. 이른봄에 핀다고 했는데 왜 아직 안피는지, 구근을 땅속에 너무 깊이 묻은게 아닌지, 토끼가 싹을 먹어치운게 아닐지, 내눈 앞에 짠 하고 꽃이 나타나기 전까지 수십가지의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돌려대었다. 봄이 좀 늦게 찾아오는 곳에 살고 있는 탓에, 피드에 봄꽃 사진들이 올라오면 더욱 안달이 났다. 이거랑 같은 꽃을 심은것 같은데, 왜 우리집 애들은 아직 기미도 보이지 않는걸까. 작년에 심었던 구근이 어떤 종류였는지 결국 영수증을 뒤져 찾아내기도 했다.


아무리 마음을 졸이고 발을 동동 굴려도,

바람이 따뜻해지고 해가 길어져야 꽃이 핀다는 것을 한번도 알았던 적이 없던 사람인 마냥 그랬다.


해가 잘 드는 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노랗고 하얗고 보랏빛이 도는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꽃 몽우리가 맺혔다 싶으면, 하루 이틀 지나 탐스런 꽃송이들이 피었다. 수선화, 히야신스, 튤립, 겹수선화, snow gloies, 무스카리가 만개했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꽃밭 풍경에 눈을 뗄수가 없었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어도 새록새록 아름다웠다.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장 사진만 찍어댔다. 바람이 불면 여리여리한 꽃대가 흔들리는 모습이 예뻐서 동영상도 찍어뒀다. 내 눈으로만 담아두는게 못믿어웠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꽃을 피운 기특한 봄꽃들


아이들을 데리고 수시로 꽃밭으로 나갔다. 함께 구근을 심었으니, 겨울 지내고, 딱딱한 흙속에서 삐죽이 나와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는건 아이들에겐 마법처럼 신기한 일이다. 자기 손으로 스스로 구근을 심고  모종을 심으면서, 아이들은 길가에 흔하게  민들레도 나무가지에 소담스럽게  크랩애플 꽃송이도 함부로 꺽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어느날 오후, 또 창문 안쪽에 서서 꽃들을 힐끔힐끔 훔쳐보다가 성에 차지 않아 작은애와 함께 맨발로 꽃밭에 나갔다. 손톱만한 씨앗에 이런 꽃이 어떻게 들어있었을까. 그렇게 피어난 꽃들이 기특하다며 둘러보는데, 꽃대가 꺽인 수선화 하나를 발견했다. 활짝 피지도 못한채로 꽃받침 바로 아래가 꺽여있었고 꽃잎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키를 키우고 꽃을 활짝 펼치는데 꽃대가 꺽인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녀석이 딱했다. 꽃 피우려고 추운 겨울 다 버텨내고 차가운 눈 녹기를 기다렸을텐데 많이 속상했다.


아이와 함께 부러진 수선화를 집안으로 옮겨 꽃병에 꽂기로 했다. 물에 담궈둔다고 살아날지는 모르겠지만, 꽃밭에 그냥 두고 올수가 없었다. 목이 좁은 꽃병에 꽃잎으로 간신히 걸쳐두고 식탁위에 두었다. 수선화가 살고 싶은 곳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도 있다는걸 이해해주길 바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식탁위의 수선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주방으로 내려오니, 식탁위의 꽃병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어제만 해도 시들시들했던 꽃잎에 물이 잔뜩 올라 생기가 돌았고, 동녘에서 뜨는 아침해가 이 예쁜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이렇게 비춰주고 있었다. 정원에서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눈에 띄지도 못한채, 꽃대마저 곧 시들어버렸을 녀석이, 식탁위 해가 잘 비추는 곳에서 혼자 무대를 독차지 하고 마음껏 예쁨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이 밥먹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자세히 오랫동안 바라보는 수선화가 되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어딘가, 나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무대가 있을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가끔 일상이 버겁고 내 자리만 없는것 같아 서러울때가 있다. 기껏 힘들게 겨울 다 보내고 꽃을 피울참인데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는다고 속이 상하기도 한다. 내 옆의 다른 꽃들은 다 크고 탐스럽게 피웠다며 비교의 저울위에서 잔뜩 기가 죽기도 한다. 휘몰아치는 돌풍을 유난히 나만 맞는것 같아 결국에는 스스로를 탓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딘가 그리고 언젠가 나를 위한 무대가 분명히 있을것이다. 그 무대는 내가 늘상 생각해오던 익숙한 풍경이 아닐수도 있고, 일기장에 깊숙히 숨겨온 소망과는 좀 다른 것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예쁨과 반짝거림을 비로소 보여줄수 있을 나만의 무대일것은 분명하다. 화단에서 몸을 옮겨 식탁위 꽃병에서 비로소 활짝피어 꽃생의 절정을 맞은 우리집 수선화처럼말이다. 그러니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내가 반짝일 그때를 위한 준비를 매일매일 해나가야겠다. 막상 그때가 오면 주춤거리며 뒤로 빼지말고, 당당하게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온몸으로 만끽할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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