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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제이 Apr 30. 2021

관계를 시작하는 낯선연습

우연히 알게된 블로그였다. 


일상과 서평이 주로 올라오는 블로그였는데, 글을 몇개 읽다보니 이내 오래 알고 있던 사람처럼 친근감을 느꼈다. 그동안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름이 알려진 작가와 유명한 책은 늘 있어왔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곧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해야할까. 아마 글을 읽으며 전해진 공감때문이었던것 같다. 삶을 살아온 궤적은 서로 많이 달랐지만, 비슷한 구석을 찾을수도 있을것 같은 한 사람이 써내려간 정성스러운 글은 내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신문기사나 블로그 포스팅에 댓글 하나 쓰는것도 부끄러워하는 나는, 그저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언제까지가 되었든 계속 글을 써주길 바랬다. 


그러던 중 책이 몇권 출간되었다. 블로그의 글들이 근간이 된 책이니 한두번 읽어봤던 익숙한 문장들이었지만, 부러 책을 주문해서 다시 읽었다. 모니터를 바라보고 읽는 글보다 책장을 만지작 거리며 읽는 글은 말할수 없이 더 좋았다. 


어느덧 출간된 세번째 책을 주문해서 읽었고, 책 맨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였다. 무슨 용기였는지 무작정 작가에게 메세지를 썼다. 아이돌 스타에게 쓰는 팬레터도 아니었고 친구에게 전하는 은밀한 쪽지 편지도 아니었다. 그저, 그 동안 당신의 글이 내 삶의 구석구석에 어떤 빛을 불어 넣어 줬는지, 어떤 생각거리를 던져줬는지, 그로 인해 내가 가끔 더 쓸쓸해지기도 더 행복해지기도 했는지 말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사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블로그에서 혼자 글을 읽을 때에도, 책을 손에 넣고 아껴가며 한장씩 읽을 때에도 정말 좋았다고 고백했다. 당신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고 덧붙였던것 같다. 그러나 한번에 몰아서 쓴 열줄 남짓의 메세지는, 그날 바로 전송하지는 못했다. 


'내가 지금 뭘 하는거지'. '스토커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아니, 어디 읽기나 하겠어, 수많은 애독자중 하나일 뿐일텐데.' 등의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던 며칠 후 어느 밤, 무슨 베짱이었는지 전송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보내고 나면 후회할것 같았지만, 눈 꼭 감고 버튼을 누르고는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 


그러고 얼마 안되어, 나는 생각치도 못한 답장을 받았다. 블로그에 쓴 글처럼, 책에 담긴 글 처럼 나직하지만 깊은 단어와 문장들로 나에게 전해진 메세지였다. 어김없이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감사를 보냈던 나에게 도리어 감사를 전했다. 나에게 위로를 잔뜩 안겼던 그녀가 이번에는 나의 메세지로 위로를 받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했던것 처럼 감사하다는 말을, 그리고 응원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수천 수만사람들 중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가느다란 끈이 생긴 순간이었다. 사람관계를 시작하는데 유난히 어려운 나에게는 나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마음속에 가득 찬 기분이었다. 


그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받은 적은 없지만, 난 여전히 그녀의 글을 읽으러 블로그를 찾는다. 예전과는 달리 가끔은 용기를 내어 글 아래 댓글을 달기도 했다. 무엇보다 나의 감사함의 표현이 왜곡되지도 부풀려지지도 않고 제대로 가서 닿았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나의 감사함과 그녀의 감사함이 함께 만나게 되어, 나의 예상치못한 용기가 영 이상한 결과를 낳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레 시작되지 않는 '관계'는 늘 한발자국 빼며 몸을 사리곤 했는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시작이라는 것은 애초에 있지 않은것 같기도 했다. 




남들 다 하는 SNS 계정이 하나 있다. 


비공개 계정이기는 한데 언제부터 팔로워가 되었는지 모르는, 친구도 가족도 지인도 아닌 그야말로 SNS 친구가 몇 있다. 그중 한 분은 늘 귀여운 그림을 그려 재미있는 설명을 덧붙여 올리시는데, 그림과 문장이 늘 밝고 생동감이 넘친다. 일면식도 없는 데다가, 서로의 실명도 모르고, 어떻게 SNS에서 친구관계가 되었는지도 알길이 없지만 (실수로 팔로워가 되었을 확률도 적지 않다), 어쩌다가 한번씩 올리는 내 피드에 늘 진심을 다해 댓글을 남겨주시곤 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피드에도 글을 자주 남기는 사람이겠거니 하면서도, 용기를 주고 위로를 주는 그분의 댓글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친구와 지인이 주는 위로와 공감은 때로는 빚을 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면, 길을 걷다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할 (그럴일은 없다, 그녀와 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얻는 마음은 좀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숫기 없고, 낯선 사람에게 관계라는 '실' 하나를 걸치는데 어려움이 많은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관심과 위로가 고마웠지만 별것도 아닌 일에 오버하는것 같아 보일까 싶어 고마운 마음도 미루기만 했다. 


피드마다 짧게라도 댓글을 꼭 남기시던 분이 한달정도 소식이 뜸했다. 괜히 궁금해졌지만, 그렇다고 이름도 모르는, 어떻게 나와 연결되었는지도 모르는 팔로워에게 막상 안부를 묻기는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전 블로그 작가에게 무작정 썼던 메세지로 연습이 되었던걸까, 며칠 생각하고 걱정하다가 메세지를 보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온 세상이 흉흉한데 건강히 잘 지내시기를 바란다고, 항상 좋은 말로 위로해주시고 응원해주어 감사했다고 마음을 표하며, 내 진짜 이름을 알려드렸다. 막상 보내놓고도 잘한 일인지 걱정이 되었지만, 감사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은 가슴에 담아 놓기만 하는것 보다는 표현하는 것이 좋다는 학습을 바로 얼마전에 했기 때문에 또 한번 낸 용기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긴 답장을 받았다. 호감과 관심이라는 것은 남녀노소, 그리고 사는곳이 어디인지, 무슨일을 하는지, 전에 만난적이 있었는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가능한 것이었다.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되고, 가끔 안부를 묻고, 서로의 삶 한발자국 뒤에서 응원하고 용기를 줄수 있는 사이가 된다는 것은 나에겐 선물 같은 일이었다. 얼마전엔, 딸이 다른 나라에 살고 있어서 자주 볼수 없어 안타까워하시는 분과 얘길 나눴다며, 이내 내 생각이 났다는 연락을 해왔다. 가족과 친구 말고도 가끔, 잘 알지는 못하더라도 잘살기를 바라는 누군가를 한번씩 떠올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도 그렇게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라는 것은 꽤 설레는 일이었다.




두 번의 경험은 나에게 더 용기를 내라고 다독였다. 안면이 없던 무명의 작가라던지, 맘에 드는 그림을 그리는 SNS에서 만난 팔로워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마음만 있었지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대학 선배이니 처음 알게 된게 이십년가까이나 된 두살 많은 선배언니가 있다. 이차저차 해서 언니와 나 둘다 한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지난 십오년동안 한번도 보지는 못했다. 아마 서울에 살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만날일은 없는 특별히 가깝거나 또 특별히 안좋을 것도 없는 사이었다. 


세월과 함께 소속과 사는 곳이 바뀌다 보니, 근근히 온라인으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서로의 인생을 조금씩 보고 보여주며 지내는 동안, 언니는 한결같이 바르고 용기있는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짧은 댓글로, '가까이 살면 맛있는거 나누며 지낼텐데' 라고 서로 아쉬움을 표한 적이 다지만, 나에게 언니는 늘 본받고 싶고, 가까이 있다면 서로 '잘하고 있어' '이만하면 괜찮아' 하며 힘을 실어주고 싶기도 했다. 긴 세월의 공백을 접고 뜬금없이 그런 마음을 전하면 어색할까봐 미루고 미뤘지만, 용기를 내어 그 선배언니에게 글을 썼다. 언니와 내가 살아온 지난세월을 떠올려보면, 앞으로도 우린 그렇게 가까이에서 격의 없는 사이가 되어 살지는 않겠지만, 언니로 인해 용기도 얻고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고, 무엇보다 언니가 세상에 맞서는 방식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응원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 표현이 때로는 갑작스러울까봐, 과할까 걱정이 되고, 다르게 왜곡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서로가 너무 잘 알고 있을까봐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덜 했고, 가족에게는 표현할 마음보다는 받을 마음에만 신경을 곤두세웠다. 누군가의 친구로서, 진심보다는 책임감으로 마음을 표현한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의무감에 정기적으로 마음을 보낸 사람들이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원래 갖고 있던 인간 관계도 넓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떠나면서, 학교를 졸업하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등등의 이유로 더욱 단순해지고 작아져버렸다. 그런 객관적이거나 물리적인 이유보다도 어쩌면 위축된 자존감이라든지, 지치거나 상처받아 닫아버린 마음과 같은 이유로 더 많이 작아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생각치도 못했던, 지금까지는 엄두도 내지 않았던 작은 관계의 실오라기들이 조심스레, 그리고 오랜 시간동안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걸쳐지는 것 같다. 


누군가 먼저 표현해야 시작되는, 어쩌면 당연한 관계의 처음을 낯설지만 연습해간다. 






커버이미지  by Womanizer WOW Tech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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