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달에 한번씩 줌미팅으로 만나는 친구들과의 대화중에 그런 얘길 했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20대 사랑얘기는 귀엽긴 한데 와닿지는 않더라.
얼마전까진 30, 40대의 예쁘진 않아도 완숙한 사랑이나 인생이야기가 훨씬 받아들이기 편했는데, 그것도 넘어서서 이젠 60-70대 노년의 이야기를 보며 감정이입을 하는 나를 발견하며 놀란다는 그런얘기.
또 나이 얘기냐고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때 어르신들 사이에서 스팸아닌 스팸처럼 돌아다니던 톡 메세지가 있었다. 가끔은 뛰어쓰기 안된 한문단의 긴 글이기도 하고, 가끔은 사진에 글씨가 글씨가 편집된 이미지이기도 했다. 세상좋은 말, 성경구절, 시 한소절이 명조, 볼드로 컬러매치 안되는 태극기용 빨강 파랑으로 쓰여져있는.. 때로는 폭포의 물이 흐르거나 트리 불빛이 반짝거리는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그럴때마다 내 톡 용량을 엄청나게 잡아먹곤 했다. 성당 어르신이나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며칠에 한번씩 그런 메세지를 보내시곤 했는데, 그럴땐 그저 "감사합니다" 짧은 답장을 보내고 그 그림화일을 열어보지 않은적도 사실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어제 얘기도중 한 친구가 그랬다.
요즘엔 그런 글귀를 톡으로 받으면 곰곰이 차근차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또 다른 친구는 요즘 블로근에서 댓글을 서로 달고 말이 좀 통한다 싶은 사람들은 보통 30-40대가 아니라 50-60대 분들이라고. 그 분들이랑 얘기하는게 편하고 좀 묵직한 울림이 있다고.
하긴 나 또한 내 인스타에 최근 젤 많은 댓글을 다는 분도 생각해보면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다. 내 사진과 글이 .. 그 나이대에 잘 먹히는 걸까 생각한적이 있긴 했다.
이런 사유의 결정판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드"다. 일년에 드라마를 한두개 볼까 말까 하는데, 어쩌다가 몇해 지나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잔뜩 나오는 티저를 보다가, 할머니들이 서로 자기 말만 하는걸 보고 기가 눌려 꺼버렸는데, 어쩌다가 1회를 보고 결국 끝까지 봤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같은 인기드라마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에겐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드라마를 처음 보면서는, 거기 나오는 어르신들이 내 엄마같고 아빠같아서, 부모님들 반추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계속 보면서는 그 드라마에 부모님이 아닌 나를 대입하여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 인생, 가족, 자식, 젊은, 나이듦, 사실 .. 아직 40대 중반을 지나는 나에겐 분명히 동떨어진 주제들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30대 후반, 그러니까 한 6-7 년 누군가와의 식사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던것을 정확히 기억한다.
내 머릿속, 그리고 마음은 고등학생때나 대학생때랑 달라진게 없는것 같다고. 마음은 그 나이 그대로, 생각은 그 나이 그대로인게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그런데 .. 지금의 나는 그.게.아.니.다. 라고 분명히 얘기한다.
그게 아니다, 몸이 나이드는 거지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것 그거 아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나이가 들고 있으며, 그건 썩 나쁜 일은 아니다.
마음의 나이가 지금의 나를, 나의 시선을, 태도를, 말씨를, 글줄을 만들고 있다는건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울고 웃으며 그렇게 드라마를 끝냈다고 저마다 드라마의 품평회를 친구들과 하며,
우리 모습을 그 할머니들 누구랑 비슷할지 얘기하다가
우리도 나중에 그렇게 함께 어울려지내면 어떨지 얘기하다가 깔깔대었다.
엊그젠 나보다 12살, 그러니까 위로 띠동갑인 어떤 분을 단 둘이 만날일이 있었다.
함께 성당을 다니고 같은 직장을 다니는 분이지만 제대로 말씀을 나눈적은 없는데다가
나보다 연세가 꽤 많으신터라 가볍게 차 한잔 해요! 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이였다.
그 분이 먼저 차 한잔 하자고 연락을 해오셔서 조금 떨떠름한 기분으로,
왜 보자고 하시는 걸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이런저런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자리에 나갔다.
여럿이도 아니고 오랜만에 열살도 더 많은 어른과 다 둘이 만나서 차를 마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요동쳤다.
요동친 마음이 좀 무색하게, 성당이며 직장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즐겁고 따뜻했다.
이 곳에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나에게 몇가지 고민하고 있는 일들을 좀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싶다고 하셨다.
나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 먼저 내게 조언을 구한다고 손을 내미시니 좀 의외였다.
아니, 내가 원래 이런 캐릭터였던가.
두시간 남짓, 정말 오랫만에 시간걱정 일 걱정안하고 맘 편히 까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나이차가 애매한 어른이라는 생각은 이내 희미해졌다.
아이들 이야기, 직장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그래 우리 같은 시대를,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구나 싶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대화였는데,
가볍지 않고 쨍하고 화사하지는 않아도 깊고 묵직했다.
이야기를 하느라 차는 식어버렸지만 마음만은 온기가 가득하게 나를 데웠다.
아주 오랜만에 진심으로 집중하여 누군가와 나눈 이야기에 두고 두고 마음이 따뜻했다.
이야기 중에 그런 얘길 하셨다.
지금 내 나이쯤이, 그러니까 40대 중반이 여자에겐 가장 좋은 나이인것 같다고.
이제껏 살아보시니 그렇다고 하셨다.
20-30대와는 비교할수 없이 아름답고, 여유롭고, 정서적으로 충만하고, 일에 집중할수 있는가장 반짝이는 나이라고.
지금 얼마나 빛나고 반짝이는 시간을 건너는 중인지 나는 실로 잘 못 느끼겠지만,
그 시간을 걸어가는 내가 참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에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는 금세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자기가 할머니가 되어가는 사람같겠지만,
본인도 그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그러니까 더 나이가 들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40대 중반이 지나면 그 가장 빛나는 시간을 지난 덕분에
그 빛이 은은하게 내 것으로 남아있게 된다고.
그러니까 평생 함께 할 나의 빛을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그분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반짝이는 시간을 건너고 있다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물결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처럼 빛을 발하는 내 모습도 잠시 떠올려봤다.
몸이 나이드는게 요즘은 자주 보여서
얼굴도, 머리카락도, 손도, 목도 .. 그리고 체력도
남편과 맨날 내가 더 심하게 네가 더 심하네
친구들과 난 탈모가 어쩌네 주름이 어쩌네 하던 말이 쏙 들어갔다.
그렇게 눈에 보이는 나이듦까지도 지금 이 시간을 반짝거리게 만들고 있다는걸
나도 아마 그 시간을 지나야 제대로 알게 될것이다.
그래도 그 분 덕분에, 내가 아름다운 시간을 여행하는 중이라는걸 한번씩 떠올리게 된건
감사할 일이었다.
그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들 덕분에
우린 조금 덜 두려워하며 한 걸음 나서는것 같다.
그것이 내 부모이든, 내 삼촌이나 이모이든, 아니면 이렇게 인연을 맺은 어른들이든
그분들이 지나간 흔적은 .. 우리에겐 역사이고 경험이고 그리고 지도같은 것이다.
이제 반짝이는 시간을 잘 보내고,
언젠가는 이 시간을 건너게 되는 조카뻘, 동생뻘되는 어린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해줘야지.
당신이 얼마나 빛나는 시간을 건너고 있는지.
당신이 얼마나 반짝이는 사람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