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아는 오월 보리밭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 시끌벅적한 식당에서 한 사람이 나를 이렇게 읽어주었다. 독서모임에서 오래 만나온 지인이 말해준 바여서,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초여름 청보리가 넓게 펼쳐진 모습이라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일렁였다. 나른한 봄을 지나온 초여름, 동네를 가로지른 신작로 한쪽으로 한 때 논이었던 땅이 너른 품을 열어 양껏 안고 있는 청보리. 그 푸르름을 자랑하는 계절이 나를 닮았다니 당장이라도 '야호' 하고 환호하고 싶었던 기억이 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이 온통 바다였던 ○○마을. 경남 거제군 하청면 ○○리. 지금은 거제시라 불리고 연육교가 놓여 섬이라고 하기엔 교통이 편리해진 작은 섬에서 나고 자랐다. 여름이면 저녁 짓는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마당 가운데 모깃불이 피워내는 매운 연기를 둥근 쟁반으로 휘휘 저어가며 평상가운데 밥상을 차리고 그 바다에서 난 온갖 생선을 넣고 햇양파를 듬뿍 넣은 달달한 매운탕을 즐겨 먹고 자랐다.
예닐곱 살 무렵 겨울이었을게다. 엄마가 외갓집에 가서 세 밤 자고 온다더니 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한 솥 끓여놓은, 마른 멸치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다 먹어치웠을 때 아버지가 끓여주신 생선국이 지금까지도 생각이 난다. 목까지 차오른 그리움과 울음이 국물을 삼키는 순간 ‘꿀꺽’하고 함께 넘어갔다. 엄마가 가고 난 뒤 처음으로 밥 두 공기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텔레비전 위 유리컵에서 자라던 다 찌그러진 양파순을 가위로 대충 잘라 넣고 끓인 생선국은 비리지도 않고 감칠맛이 났다. 지금도 딱 한 번만 다시 먹고 싶은 생선국. 정작 아버지한테는 그때 그 국이 정말 맛났다는 말을 아직도 못 하고 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때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버릴 것 같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