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질문하는 임정아 Jun 14. 2023

엄마, 나 좀 살려줘, 제발

수치심의 치유 3일 차

#3일 차
동일시 p.29 유기란 그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자아와 정신적 힘이 말살되는 결과를 낳는다. 감정을 반영해 주는 사람 없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나의 고백---엄마가 유행가 부르듯 자주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내가 젖먹이 때 도로공사 일을 도우러 나간 엄마가 길 한가운데 포대기만 펼쳐놓고 나를 앉혀두면 아침부터 거의 해 질 녘까지 울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더라며.  그게 무슨 칭찬인 듯 자주자주 들려주었다.
"엄마, 나는 너무 무서웠어. 그리고 배가 고팠어. 엄마가 말도 없이 사라져서 나는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어. 나 좀  살려줘."
나는 늘 불안이 기저에 깔려있다. 나의 그 불안 때문에 내 아이들에게도 그 감정이 투사되어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놀이터에 혼자 못 나가게 했다. 지금도
밤 10시만 넘으면 혼자 밖에 잘 못 나가고 내 아이들이 외출하면  무사히 귀가할 때까지 안절부절못한다. 심지어 회식하러 간 남편이 집에 오지 않으면 새벽까지 잠 못 들고 기다린다.


동일시

p.30 그전에 일어났던 안 좋은 상황과 조금이라도 비슷할 경우 그때 가졌던 감정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p.31 분노는 당신을 보호하는 감정이며 분노의 감정이 없으면 자신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 기분만 맞추려는 사람이 된다.
 p.32 내면의 삶은 없고 모든 것을 외부에서 이루려 한다.

 p.34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로부터 비롯한 생각을 행동으로써 보상하려 만들어 소위 ‘행위 지향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


 p.36 죄책감은 자신의 가치를 좋게 보고 있기에 그가 그 자신이 믿는 방향대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은 아예 자신의 가치를 좋게 여기지 않고 수치스럽게 여긴다. 행동이 아닌 존재에 관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카타르시스 ---한 구절 한 구절 모두 나의 이야기를 써 놓은 듯해서 오늘 하루종일 화가 나있고 예민해져서는 남편, 딸아이들, 심지어 가르치는 아이에게도 언짢은 기분을 투사했다. 그러고 나니 기분은 더 곤두박질쳐서 결국 막내의 도와달라는 손짓에도" 사실은 네가 걱정 돼."라고 말하고 싶은 걸 격앙된 목소리로 다그치기부터 했다. 나의 해로운 수치심이 순간순간 분노조절장애처럼 작동할 때가 있다. 아니 많다.

통찰 ---나의 수치심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토록 힘들구나. 아직도 회피하고 싶은 거구나. 잘못된 나르시시즘으로 나오는구나. 나의 잘못을 인정하면 될 일을 잘못된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 애쓰는구나.
나를 알아차리고 실수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자. 잘못을 알았으면 사과부터 하자. 끝까지 나는 옳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하지 말자 쫌!!!


작가의 이전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