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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문하는 임정아 Apr 17. 2024

수술 또 수술

아빠 미안해

신발이 사라졌다. 엄마가 외출용으로 신는 보라색 구두가 없어졌다. 댓돌에 나란히 있어야 할 아버지 신발도 없어졌다. 마당은 깨끗하게 쓸려 있고 마루에서도 윤이 난다. 엄마가 오래 집을 비울 때 하는 습관이다. 무슨 일일까? 며칠째 배가 아프다고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에는 학교 갈 때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누렇게 뜬 얼굴로 죽을 드시고 계셨던 모습말이다. 혹시나 하고 소마구간에 가보았다. 여물통에  소죽이 반이나 남아 있다. 깨끗한 볏짚도 깔아 두었다. 털을 빗어 말끔해진 소두 마리. 엄마는 어디 멀리 간 게 분명하다. 이렇게 집안 곳곳 단속을 해놓았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많이 아픈 걸까? 집으로 돌아와 마루에 앉았는데 어지럽고 토할 거 같다. 전화기 옆에 꼭 붙어 앉아 기도를 했다. 따르르르 전화기가 한 번 울리자마자 전화기를 들었다. "엄마다, 놀라지 말고 들어라.  아버지 수술했다. 수술은  잘 됐으니까  걱정안해도 된다. 밥 잘 챙겨 먹고. 한 일주일 걸린단다."

 아버지는 올해 뱃일을 하다 보니 아픈 걸 잘 참는 편이다. 알고 보니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다고 했다. 하루만 늦었어도 큰일 났을 거라며 결국 한 달 넘게 입원을 했다. 실밥을 풀기 일주일 전에 옆침대 계시던 아저씨와 농담을 주고받다 너무 웃어서 수술 자리가  다시 터져버렸단다. 평소에 농담을 즐기는 아버지는 병원에서도 큰 스트레스 없이 잘 보냈다. 게다가 그 아저씨와 친구가 되어 퇴원 후에도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건강은 잠시 잃었지만 사람을 얻은 것이다. 아버지가 입원한 대우병원까지 가려면 페리호를 타고 실전으로 가서 고현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연초에서 내려 옥포로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초등학교 3 학년. 아버지가 걱정되는데 엄마도 보고 싶은데 혼자서 버스를 갈아타고 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한 달이 지나 아버지가 퇴원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페리호에서 내려 동네로 들어서는 큰길이 아니라 지름길로 엄마와 함께 걸어오는 아버지가 보였다. 수척해진 볼.새하얗게 변한 얼굴. 윗집 금순할머니가 먼저 손을 잡고' 고생했다. 고생했다.' 되뇌자 아버지도 눈가가 촉촉해졌다. 평소 가족같이 지내던 이웃들의 환대를 받으며 아버지가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꿈을 꿨다.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갔는데 주인아저씨가 하얀 국화를 선물이라면서 나눠준다. '왜 하필 하얀 국화야?받기 싫은데' 궁시렁대며 받아서 온다. 골목에 들어서며 왠지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 대문 앞에 버렸다. 무슨 꿈이지? 한 번씩 예지몽을 꾸는 나는 아침부터 괜히 불안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찝찝해서 조심조심 걷고 물웅덩이가 보이면 피하고 점심은 소화가 잘 되는 된장찌개를 먹었다. 늦은 오후가 지나고 받은 전화 한 통.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아부지 경운기사고 나서 수술 들어갔다. 너무 걱정은 말고 올 필요도 없다. 알고나있으라고 전화했다."

 경운기를 몰고 논에 갔다가 집으로 오던 아버지가 대문 앞에서 사고가 났다고 한다. 경운기 운전은 큰길에서 불안해서 늘 조심하라고 했는데 설마 집 앞에서 사고가 날 줄이야. 그것도 집에 잘 도착하고 대문 앞에서 말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내가 흰국화를  안 받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싶다가 그나마 대문 앞에서 버렸기 다행이지 집으로 갖고 들어왔으면 어쩔 뻔했냐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운기 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친 아버지는 이도 흔들려서 식사도 잘 못하고 넉 달 넘게 입원을 했다 .두 다리는 다행히 자유롭지만 먹을 것을 제대로 못 먹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뵈러 가면 점점 살이 빠져서 마음이 아팠다. 평소 좋아하는 양념치킨이 눈만 감으면 둥둥 떠다닌다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양념 치킨을 먹겠다고 하셔서 웃음이 나왔다. 동아대 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일주일에 한 번 꼬박꼬박 면회를 갔다. 괜찮다고 오지 말라고 말씀하셔도 마음은 기다린다는 걸 안다. 같은 병실에 가족이 찾아오고 손녀가 오면 우리 애들은 안 오려나 하고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는 걸 안다.
병원에 있으면 하루가 길고 낮잠을 자도 점심시간이고 돌아서면  밥이 나온다. 밥은 또 얼마나 맛이 없는지 억지로 삼키기 일쑤라는 걸 경험해봐서 알기에 자주 찾아뵈었다. 옥상에도 올라갔다가 복도를 서너 번 왕복해서 걷다가해도 시간이 더디게 가니  하루를 보내는 게 심심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병원에 오래 있다 보니 나의 편과 적이 구분이 간다고 말씀하셨다. 거제도와 부산이 멀지도 않은데 누구는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고 누구는 두 번이나 왔다 갔단다. 봄에는  밭도 갈아주고 겨울에누 나무도 나누어주었는데 사람이 정이 없더라며 동네 어르신들 이야기를 하신다. 연세가 드시니 아이같이  옹졸해지는 마음이 생긴다며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니 퇴원하면 따지러 간다고 하시는 걸 그 어르신도 다리를 접질러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봄이 오니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름을  나르고 아버지 머릿속에는 머리 농사일이 계획되고 순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실은 하얀 시트에 링거를  꽂은 할아버지 신세다. 고향집에서 뵐 때는 늘 분주히 움직이고 경운기를 운전해서 옆동네에 있는 농협에도 다녀오시고 하루에 여섯 번 움직이는
버스를 타고 읍내에도 다녀오시니 그간 병원생활이 지루하고 심심할만도 하다.  


담배를 피울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담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던 아버지는 결국  담배를 끊게 되었다.
담배를 못 끊는다는 사람들에게 "그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늙은 나도 했는데"라고 큰소리치면서 흐뭇해하시는 걸 보니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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