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윌리를 찾아라!
2018.8.11.(토)
레오나즈 말라사다(Leonard’s) -KCC 파머스 마켓(KCC farmer’s market)- 라나이 전망대(Lanai lookout) - 할로나 블로우 홀(Halona Blow Hole & Cove)-마카푸우 등대 트레일(Makapu’u Lighthouse Trail)-와이마날로 비치(Waimanalo Beach)-소피아 피자(Sophia pizza)-와이키키 모쿠 서핑(Moku surf)- 세이프웨이 장보기(Safeway)
아침으로 레오나즈에서 핫 말라사다를 테이크 아웃했다. 분명히 레오나즈 말라사다가 더 맛있었는데 ‘말라사다’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힐로의 안개 낀 휴게소 말라사다이다. 음식은 맛으로만 기억되는 게 아닌가 보다.
힐로 파머스 마켓을 못 간 아쉬움을 달래러 KCC 파머스 마켓에 갔다. 주차 대란이었다. 나갈 것 같은 자리에 눈치 보며 서 있다가 자리가 나면 들어가는 시스템이었는데 우리가 기다리던 차들은 물건만 실어두러 잠시 다녀가거나, 일행을 기다리느라 시동만 걸고 꿈쩍도 안 해서 자꾸 허탕을 쳤다. 주차장에 관리자 한 명만 있어도 이 혼란스러움이 줄어들 텐데, 인건비를 아끼다 보니 불편한 게 많다. 미국 사람들도 관광객인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저기 비었다! 하고 서둘러 가보면 사람이 서서 자리를 맡아두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Are you leaving?(나가시나요)” 하고 저 입구에서부터 운전자와 찜을 하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
주차하느라 지친 데다 힐로에서 과일을 많이 못 먹고 온 게 한이 된 남편이 뭐든 사줄테니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했다. 애 둘을 양 손에 잡고 입구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너무 많다. 그러다가 간판만 보고 홀린 듯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가게가 있었으니, 'Fried Green Tomatoes' 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기차역 근처에서 팔던 ‘튀긴 토마토’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가격도 확인 안 하고 애들은 그늘에 앉힌 후 줄을 섰다. 비쌌지만 아주 맛있었다. 시큰둥하던 애들도 맛있게 먹었다. 바로 즙을 짜서 만들어주는 사탕수수 주스도 먹고, 망고도 사고, 드래곤 아이도 샀다.
오늘 오전 여행의 컨셉은 ‘빡센 패키지여행’이다.
라나이 룩아웃, 할로나 블로우 홀을 들린 후 마카푸우 등대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라나이 룩아웃에서 아이들은 시원하게 부서지는 하얀 파도를 담담하게 막고 서있는 넓은 바위에 이름을 새기고 싶어 했다. 다음에 와서 남아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내일이면 바람에, 파도에 사라지겠지만 이름을 새겨놓은 넓은 바위가 있는 이 풍경은 아이들 마음에 오래 새겨졌으면 좋겠다.
할로나 블로우 홀은 파도가 바위틈 사이로 들어오며 물줄기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저 밑으로 내려가서 블로우 홀이 튀기는 물방울 세례를 받고 싶었지만 아이들과 같이 내려가기는 무리였다. 블로우 홀에서 큰 소용돌이가 생길 때마다 국적이 다른 관광객들이 다 같이 “와우, 우와” 각자의 언어로 탄성을 질렀다. 탄성의 합창이 들릴 때마다 같이 웃었다.
마카푸우 등대는 하와이의 유명한 트레킹들 중에 필박스 하이크 트레일을 공사중이어서 못 가게 되어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오르는 길이 힘들었지만 더는 못가겠다 싶을 때마다 코너를 돌면 어김없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개들도 힘든지 헉 헉 소리를 냈다.
그 날의 필요할 물을 미리 계산해 ‘적당한’ 양을 준비하기는 참 어렵다. 어떨 땐 얼음물을 너무 많이 준비해서 가방이 쓸데없이 무거워지고, 어떨 땐 부족해서 온 가족이 재난상황에 처한 것처럼 물을 아껴서 나눠마시며 버텨야 한다. 오늘은 후자이다. 정상에서 보는 바다색은 예술이었다. 목마름도 잊게 만들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뛰어들 것 같은 치명적인 물색이었다.
오후에는 와이마날로 비치에 갔다.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해변이었다. 똥꼬1호는 하루에 수영복 두 번 입기를 싫어한다. 좀 있다 와이키키에서 놀고, 이번엔 안 들어가겠다고 했다. 뭐든지 열심히 하고, 노는 것을 특히 열심히 하는 아빠곰은 1호가 놀 열의가 없자 좀 화가 났다. 1호는 아빠 기분을 살피며 ‘그냥 들어갈까?’ 갈등하다가 이번엔 엄마와 모래놀이하며 쉬기로 했다. 한적하고 아름다운 비치였다. 파도가 바디보드 타기 너무 좋다며 남편과 2호는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10분도 지나지 않아 남편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몸에서 파란 실 같은 걸 제거해달라고 했다. 해파리인 거 같다고 허벅지가 따갑다고 했다. 장갑을 끼고 나뭇가지로 찍찍이처럼 질기게 달라붙어있는 파란 실을 떼어냈다. 아직 파도놀이 삼매경인 2호를 불러냈다. 남편은 따갑긴 한데 심하게 아프지는 않다며 해파리에 쏘이면 바닷물로 해독을 해야 한다고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조금 있다 나오더니 파도가 너무 좋아서 온몸에 무장을 하고 들어가서 놀겠단다. 절대 안된다고 당장 나오라고 하고 짐을 챙기는데 저쪽에서 또 비명소리가 났다. 1호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남자애가 엉엉 울면서 바다에서 나왔다. 가까이 가보니 그 아이도 해파리에 쏘인 거였다. 난 얼른 바다에 다시 쏘인 부위를 담그라고 말해줬다. 아직 어린 데다가 남편보다 더 심하게 쏘였는지 아이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계속 울었다. 캠핑을 온 것처럼 거하게 짐을 풀었던 그 집도 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이크 들고 방송이라도 하고 싶었다. 조심하세요! 해파리가 있어요.
물이 차면 놀기가 힘들고, 물이 따뜻하면 해파리가 걱정이고... 이 이쁜 비치를 두고 떠나기가 아쉬워서 해파리에 쏘인 남편과 한참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 한여름 뉴스와 여름방학 물놀이 안전 가정통신문에서만 보던 해파리를 하와이 땅에서 직접 쏘였다.
늦은 점심은 백종원의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하와이 편에서 눈여겨보았던 소피아 피자에서 먹었다. 백종원이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오후에는 와이키키에서 아빠곰의 두 번째 서핑 수업이 있었다. 서핑 천재 똥꼬1호도 레슨을 한 번 더 받을까 했는데, 카운터에 있던 선생님이 오늘은 파도가 높아서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 잘못 타고 겁을 먹으면 평생 서핑은 안하겠다고 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줬다. 1호는 안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남편이 걱정이었다. 오늘은 제대로 타야 할 텐데, 신나게 타는 거 보고 싶은데... 남편의 소중한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에 나까지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그런데 카이카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우리 남편의 선생님은 잭 선생님이란다. 카이카는 어디 있냐고 물었는데 고개만 저을 뿐 시원한 대답이 없다. 애들이 옆에서 우리는 카이카 선생님이 좋은데! 를 외쳤다. 혹시 카이카 선생님이 우리와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어 살짝 실망한 마음을 감추고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애써 마음을 달랬다. 전에도 담당 선생님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바꾸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하고 서핑숍을 탓했다.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
잘 배워보겠다는 마음이 컸던 남편은 잭 선생님과 금방 친해졌다. 전에 1호와 같이 하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기초 동작부터 배우고, 고프로까지 장착해서 바다로 나갔다. 오늘은 파도도 높고, 서퍼들은 더 많았다. 애들과 파도 타고 잠시 놀다 보니 남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검은 래시가드를 입은 까만 머리가 너무 많았다. 윌리를 찾아라 같았다. 우선 까만 래시가드를 찾고, 흰색 보드를 찾고, 너무 잘 타는 사람은 땡, 바지 테두리에 살짝 있는 갈색을 찾다 보니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찾았나 싶으면 카메라 줌을 당기다 놓치고 셔터는 계속 누르는데 우리 남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오늘은 멋진 사진 한 장 건져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말이다. 파도가 세니 애들과 놀 때도 바로 옆에 계속 붙어있어야 했다. 잠시 모래 위로 올라와 있으라고 하고 둑에 가서 아빠곰 찾기를 하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기를 두세 번쯤 한 후에 사진은 포기하고 가방에 넣어뒀다. 고프로가 잘 찍어주고 있을 거야. ‘진짜 잘 타더라.’ 이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우리는 남편을 못 찾았는데 남편이 보드를 타고 우리를 찾아왔다. “나 봤어? 장난 아니지?” 흥분해서 말하는데 한 번도 못 봤고, 한 장도 못 찍었다 고백했다. 옆에서 잭 선생님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정말 잘했다고. 정말 한 번도 못봤냐고, 그걸 못봤다니 너무 아쉽다고 했다. 으악. 너무 아쉬웠다. 나는 “그래도 고프로가 다 찍어줬지?” 했는데 중고로 산 고프로가 문제가 있었는지 처음 패들링 부분만 찍히고 그 후로 작동을 안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빠가 서핑을 정말 잘하더라~는 카더라와 전설로 남았다. 내가 찍은 사진은 한 장도 건질 사진이 없었다. 사진을 보며 또 윌리를 찾아라를 했지만 윌리는 없었다. 내가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윌리를 이리도 못 찾을 줄이야 스스로도 실망일 정도였다. 하지만 윌리는 오늘 신이 나서 무용담을 늘어놓았고 한 명의 증인 잭 선생님도 있다. 우리 남편은 서퍼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늦은 저녁 장을 보러 세이프웨이로 갔다. 조금 비싼 유기농 마트이지만 회원가입을 하면 할인 혜택이 바로 주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늦게 가서인지 회원가입 데스크가 문을 닫았다. 다른 마트까지 갈 시간은 안되고 벌써 살 물건을 카트에 산처럼 쌓아둔 후였다. 회원 할인 가격이 아니면 너무 비싸 빼놓아야 할 게 많아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하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이쁜 아가씨가 남자 친구와 장을 보고 있었다. 둘이 영어로만 대화를 하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왠지 느낌이 그랬다. 아줌마는 용감한 법! 한국사람이 아니라도 아시아 사람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친근감이 있어서 나는 말을 걸었다. 여행 중인데 회원카드를 만들어서 장을 보려고 했는데 회원카드 만드는 곳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혹시 괜찮다면 회원카드를 잠시 빌려줄 수 있을까요? EXCUSE ME로 시작한 영어가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있는데 반가운 우리말로 “혹시 한국분이세요?”한다. 너무 반가웠다. 당연히 된단다. 나는 저쪽에서 아직도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한테 다 담아서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아직 선남선녀는 쇼핑이 안 끝난 것 같은데 쇼핑을 마무리하고 우리와 줄을 같이 서주었다. “하와이는 물가가 너무 비싸죠. 저는 미국 본토에서 공부하는 중인데 방학이라 집에 잠시 들어왔어요.” 하와이 물가는 관광객한테만 비싼 게 아니라, 하와이가 집인 사람들에게도 부담이 되는구나. 카운터에 있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갑자기 PASSPORT(여권)을 보여달라고 했다. 회원권을 빌려 쓰는 입장에서 안 그래도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본인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하는 생각에 긴장하고 있는데 주류를 살 때는 나이를 확인해야 한단다. 나는 안도감에 “Do I look so young? THANK YOU FOR ASKING.(제가 그렇게 어려 보여요? 물어봐줘서 고마워요)”하고 말해서 모두 다 웃었다. 선남선녀에게 너무 고맙다고 얘기했다. 속으로 둘을 축복했다. 저 둘 이쁜 사랑하게 해 주세요.